망나니 자식을 타이르다 지친 아버지가 어느 친지에게 때려서라도 자기 대신 애를 사람 좀 만들라고 했다.

부탁을 받은 사람의 열과 성이 지나쳤는지 아니면 일진이 나빴는지 그 자식은 맞아 죽었다.

작년에 있었던 실제사건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운탓으로 돌리고 훌훌 털고 일어나 이번엔 둘째 아들도 그 친지에게 보내려 한다고 가정해보자. 둘째는 십중팔구 가출할거싱다.

형의 사건을 운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자기 목숨이 너무 아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경제 돌아가는 모습이 위의 예와 그렇게 닮았을수가 없다.

아들은 물론 우리 경제의 주인공인 서민이나 기업들의 모습이고 나머지 주인공은 상상에 맡긴다.

얼마 전 어느 언론사에서 행한 설문조사에서 현 정부가 남은 일년 동안 가장 주력해야할 경제개혁의 대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금융개혁·실명제보완·노사문제 등 굵직굵직한 선택사항이 있었지만 나는 ‘기타의견’난에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만 주는 것이 최선의 개혁’이라고 적었다.

나라 경제가 온통 널뛰기를 하는 마당에 더 열심히 노력하기는 커녕 복지부동 왠말이냐 하겠지만 이는 경제의 기본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개미같은 사람과 기업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경제행위의 기본적 동기는 만고불변이다.

경제가 불안하면 몸을 움츠리고 앞날이 밝아 보이면 남보다 한 발 먼저 나가려는 경제적 이기심은 기실 이들의 힘이 합쳐진 국가 경제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을 유지한며 성장하게 하는 기본 동력이 된다.

그러나 현 정부가 시작되고나서 북치고 나팔불며 행한 숱한 개혁이라는 것 치고 현상유지는 커녕 개악이 안된 것이 얼마냐 있냐고 묻고 싶다.

현정부 개혁정책의 총체적 실패는 결국 국민들이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선 정부의 정책들을 불신하고 몸을 움츠린 탓이 가장 크다.

기존 제도나 정책의 부분적 수정을 통한 ‘개선’과는 달리 개혁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수반하기 마련이고 자연히 반발이나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해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 동기에 찬동하고 밀어준다면 성공 못한 이유도 없다.

개혁은 마치 구멍 뚫린 배를 타고 암초를 헤쳐나가는 것처럼 발발과 불확실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 때는 차후의 뒷일을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목숨부터 건지자는 선명한 목적의식이 가장 중요하다.

이 정부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험난한 바다로 난데없는 배한 채 썩 밀어 놓고 자축의 잔부터 돌리다 그 배가 기울면 잽싸게 또 다른 배 뛰워 보내는 식의 본질적 개혁과 거리가 먼 기회주의적인 태도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데 가장 큰 원인이있다.

면면을 보면 엘리트도 아닌 사람들이 엘리트 의식에 가득차 밀실에서 적당히 머리굴려 만든 작품을 싸구려 깜짝쇼무대에 내놓았다가 반짝인기가 지나면 또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식의 정책결정에, 누가 신뢰를 주며 권위를 인정하겠는가. 권위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는 일에 급급해 툭하면 무엇을 뿌리부터 흔드느니 아주 오래 나자빠져있었던 것을 일격에 바로 세우느니 해대니 불안해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개혁의 성공에 가장 필요한 여건은 국민의 신뢰이지 좋은 머리가 아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빌린다고 갈파한 철학있는 대통형이 왜 사람의 마음은 공짜로 오지 않음을 모를까. 현 정부의 권력자들과 국민들의 숨바꼭질은 지난 몇 년 내내 계속됐다.

교육개혁이니 사법개혁이니 정부개혁이니 해서 한 두번 속아본 국민과 기업들은 ‘개혁’이란 말만 나왔다면 몸을 움츠리는데 정권은 아마 국민들이 개혁이 흡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여기는지 정권의 인기도가 90%에서 한자리 숫자로 떨어지는데도 노사관계개혁·의료개혁에다 최근에는 금융개혁까지 하겠다고 나섰다.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때문에 장관을 시도 때도 없이 바꿔 정책을 마비시키고 저 혼자 다 한다고 이 돌 저 돌 다 들쳐서 다음 정권 사람들이 가재잡을 기회마저 망쳐놓는다면 이 정권은 ‘무능과 독선’이라는 오명에다 ‘부도덕’이라는 딱지까지 덧붙이고 물러날 것이다.

요즘 그나마 이 정부의 유일한 업적이라고 얘기되던 ‘금융실명제’때문에 국민들이 저축을 안해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했느니 하는 주장을 듣다보면 쓴 웃음이 나온다.

금육실명제는 애초부터 국민경제활동에 있어 ‘형평’의 재고라는 한가지 선명한 목표를 가지는 것이 당위이다.

지난 30여년간 ‘효율’만 보고 뛰어온 우리의 경제현실에서 삶의 가치는 빵조각의 크기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명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바탕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정책목표이다.

어차피 실명제는 대부분의 서민들에게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정책이다.

현실적으로 이자나 임대료, 주식배당 등을 합쳐 일년에 4천만원이 되는 가계가 얼마나 많겠는가. 실명제 때문에 사람들이 저축을 안해서 나라가 망가졌느니 하는 주장들은 오만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미래가 불안하면 활동을 줄이고 안정을 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제인들의 태도이다.

주가·물가·지가·금리·환율등 경제활동의 바탕이 되는 지표들이 하루가 다를 정도로 불안정한데,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이익집단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가계나 경제활동과 직결되는 금융제도를 밀실에서 뚝딱거리고 있는 현실에서 서민이나 기업이 할 일이란 땅에 바싹 배를 대고 시계를 보는 일 뿐이다.

괜히 아버지 말듣다 목숨을 위태롭게 할 바에 망나니 소리 듣더라도 잠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마 김영삼대통령도 한보사태니 뭐니 해서 냄새가 날 때 아들을 처음부터 동향친지인 검찰에 맡기지 말고 국민들에게 맡겼다면 지금처럼 자식이 몰매맞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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