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나라 교육과정사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만한 교육과정 2천(제 7차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 개정안이 발표됐다.

이 개정안은 95년에 발족된 교육개혁위원회의 신교육체제 구상에 따른 것이다.

비록 교육과정 연구에 대한 경험이 짧기는 하나 이번 개정 작업에 참여해온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가지 느낀 바라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번 교육과정 개정(교과정)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칭해질 만큼 그 장벽은 여느 교과정 보다도 클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교육 밖에 잇는 사람들까지도 크게 우려해 온 것으로 알고 잇다.

그럿은 학교현장이라는 ‘실천의 장’에서 나타나는 교육과정의 이중적 모습, 교유과정 변화에 대한 현장 사람들의 회의적인 태도, 그리고 교과이기주의라는 관성을 포함한 교육의 하부 구조와 자율 역량 구축의 한계 등으로 볼 수 있다.

원래 ‘교육과정 개정’은 교육과정이 취해야 할 가능태와 학교 교육의 과정에서 나타나고 잇는 현실태간의 간극을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취해야 할 교육과정 본연의 가능태와 현실태간의 괴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고 오히려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한 이러한 장벽에도 불구하고 왜 개정은 단행돼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가운데서 연구자로서 나는 자신의 입지를 어디에 둬야할지 고민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한 속시원한 해결을 제한된 지면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사안은 이번 교과정이 착목하고 있는 시공간적 맥락이다.

이번에 추구하고자 한 교유과정 변화의 지향점은 곧 ‘21세기 정보화·세계화 사회’이다.

‘2천년대 진입에 따른 문명사적 변화관’은 미해 교육과정의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한 전초인 동시에 현재의 사회역사적 상황과 대비되는 관점에서 부각돼 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교유고가정 개설에 실제로 투입된 시간은 이러한 변화의 시급성에 걸맞지 않아, 그 결과로 중요한 쟁점들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교과정이 불과 몇 달 간의 연구로 끝나는 일종의 이벤트성의 작업으로 수행되는 데는 교과정에 대한 현장의 지지 결여라는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이 문제는 지금까지 여섯차례에 걸친 교과정이 대부분 정치적 강령의 테두리안에 수행돼 왓다는 점이다.

이번 개정의 출발점도 교육개혁위원회의 신교육과정 구상에 의거한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예컨대 수준별 교육과정의 아이디어나 10년간의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에서의 사전 검증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 처방된 ‘특효약’으로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개정의 출방에서부터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지면, 일종의 초월적 기의-학문적 또는 이론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 정당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사회역사적·정치적 상황에 의해 창출돼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는 이론이나 아이디어로 작용해온 것이다.

결국 위로부터의 개혁은 실제 학교 현장이 안고 있는 문제와 요구에 대한 참여자의 밀도 높은 논의를 제한하며 학교 교육현장에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간과한다.

그리하여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서도 개혁의 의지와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현실적 여건에 대한 우려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와 같은 난제 속에서 현실적 여건 고려(오랜 기간 미해셜인 채 남아있는 교육투자, 교육시설과 환경, 경직된 학교교육 풍토 등)가 우선이냐, 개혁의 의지와 찾기 교유고가정 개혁의 발판 제공이 우선이냐 하는 딜레마를 면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아직도 교과정의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제1막을 내린 막간의 시점에서 남은 막들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2천년대를 향해 줄달음쳐 온 자신의 뒤돌아 보는 것이다.

즉 현행 교유고가정의 장점과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반성, 교유고가정 개정에 대한 인식의 기반을 달리하는 다양한 요구들을 반영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 모색, 또한 선진 외국의 교유고가정 실천 사례, 예컨대 수준별 교육과정 아이디어 또는 교과별 성취 기준 설정 및 구체화 방안들을 우리의 교육 환경에 어울리게 각색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는 2천년대의 도약을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여유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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