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양심수의 연대를 향해

얼마전 한 시사잡지에서 ‘나이지리아 공포특급’이란 기사를 보았다.

세계5위의 산유국이자 아프리카 최대인구(9천6백만명)를 자랑하는 서부 아프리카의 강국 나이지리아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비난의 원인은 사니 아바차 군사정부가 지난 11월 10일 환경운동가이자 유명한 작가인 켄사로위와를 비롯한 그의 지지자 8명을 전격 처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범(양심수)에 대한 사형이라! 환경보호와 자결권 이 두 가지는 처형된 그가 반평생을 바친 목표였다.

그의 도덕적 선명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되어 감옥에서 그는 여러상을 받았고 처형되기 며칠전 96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됐었다.

군사정부 하에서 나이지리아에는 국민을 위한 주권론은 없다.

사상·양심의 자유는 없다.

나이지리아의 헌법규범은 장식적일 뿐이며 더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한편에서 켄 사로위와는 처형되었고, 곳곳에서 양심수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한국인권단체협의회가 지난 11월23일 이틀간 ‘탈냉전 신국제질서와 인권 국가안보와 인권안보’란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기조발제를 맡은 로스 다니엘스 엠네스티 집행위원장은 “문화적 상대주의를 강조하며 인권탄압을 정당화하는 논리, 경제발전을 이루면 결국 인권도 보호할 수 있다는 논리위에 국가보안법은 전세계적으로 인권을 탄압하고 그 반대자를 억압하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안보라는 미명아래 국가보안법에 인생의 반을 빼앗겨버린 대만의 장기수 임서량(34년 복역), 한국의 김선명씨(43년 복역)등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사회안정과 국가를 보호한다는 뜻의 ‘국가안보’라는 개념은 그 본질은 외면당한채 국가안보에 대한 공포와 억압분위기를 조장해내는 국가안보이데올로기로 타락되어 내부의 비판자들을 억압하는데 더 많이 사용되었던 사실에 동감했으며, 그 정점인 국가보안법을 집중적을 비판했다.

우리의 사상통제의 역사는 국가보안법의 역사 그 자체다.

국보법은 1948년 좌익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제정되어 이듬해인 49년에만 10만여명이 이 법으로 입건되기도 했다.

결국 국민은 이런 법이 존재하는 상태에선 더 이상 주권행사자가 아니며, 국가를 등에 업은 정부만이 존재할 뿐이다.

헌법의 중요가치의 전도이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나 국가안보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헌법교과서의 기본권제한에 대한 설명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정형화된 이론이다.

과연 우리는 헌법에 보장된 양심·사상의 자유를 짓밟아야 할 만큼 공산주의 혁명의 위협속에 살고 있는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12월3일 구속되기 전 발표한 대국민성명에서 사죄의 말은 한마디도 없이 자신의 반대정치세력의 행동을 좌파운동권의 방향과 같다고 몰아부쳤다.

편견적 반공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무지한 일부 사람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사고의 소유자인 대통령들이 지배했던 5공, 그 연장선상인 6공에서의 양심수들은 철저히 양심·사상의 자유가 유린되었던 것이 아닌가. 현행 국제인권규범은 국가안보와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각국에서 생기는 인권침해사태에 적절하게 대응하기에 많은 제약을 갖고 있다.

국가의 비상사태선포가 적절한 조치인가에 대해 인권 이사회는 어떤 판단권도 없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인권을 신장시키고 보호하기 위한 지역적 장치와 연대가 필요하다.

내부의 억압에 대한 저항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적 연대에 의한 강력한 집행력를 갖춘 외부의 요구가 병행되어야 한다.

각국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에 근거된 강제력을 갖춘 국제법규와 국제적 인권보장기구와 국제적 연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고통을 겪는 양심수가 있다면 이 세상에 진정한 인권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모든 문제의 시작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을 잊고 있는데 있다.

모든 국가는 성문이든 불문이든 헌법을 갖고 있다.

헌법이 추구하는 최고가치는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 그리고 국민개개인은 자연인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이런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사상의 자유를 헌법의 내용 해석으로 배우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법학의 내용으로 인식한다면 양심수문제는 헌법의 중요한 인권문제가 된다.

양심수문제는 헌법상 보장되어야 할 양심·사상의 자유문제이며,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 그 국가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의 성원으로서의 각국의 평등문제이기도 하다.

인권보장에 있어서 어느 나라나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자연인으로서 인간은 어디에서나 존엄하고 가치있는 존재이므로. 양심수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적 연대, 이것이 진정한 법의 세계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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