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도시계획을 바라보며

낙엽이 하나 둘씩 떨어지는 창밖을 내다보면 가을의 을씨년스러움을 느끼고 시멘트벽으로 둘러쌓인 연구실에 앉아 있노라면 내 존재가 더 왜소해짐을 느끼곤 한다.

나는 이럴 때면 보다 넓은 공간을 찾아 산으로 들로 답사를 떠나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어느 곳을 찾아가든지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의 건축문화는 예부터 주어진 산세에 맞게 길들여져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초가집은 산등성이와 비슷하게 쪽박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지붕을 얹도록 지어졌고 심신 산골의 고찰은 우람한 산세에 어울리게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이와 같이 건물들이 자연 환경에 어울리게 지어진 이유는 인간이 보다 편안하게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 동안 우리는 외세에 눌려 살다보니 남보다 큰 것, 남보다 높은 것에 집착하는 습관이 길들여 진 것 같다.

더구나 6.25 이후 서양 문화가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70년대 이래 계속된 경제 성장, 그리고 몇번의 사회 변화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짓눌렸던 한을 풀기 위해 너 나 할 것 없이 이성을 잃고 있는 듯 싶다.

좁게는 개인 가옥이 분수에 맞지 않게 커져가고 넓게는 공공건물이 무제한으로 높이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지방화가 정착되기도 전에 정부에서는 세계화를 선창하고 나섰다.

너무 성급한 행보가 아닌 듯 싶다.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이러한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국보 제1호를 남대문으로 알고 있는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이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를 하고 나섰다.

창반 앵론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또 그에 대한 정당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남대문을 보호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대문은 그 집안과 가풍과 집안의 재산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로 쓰여졌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대문에 많은 투자를 한다.

그리고 국가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에는 공항을 그 나라의 대문이라 하여 규모도 크게 하고 갖가지 현대시설뿐 아니라 전통문화를 가미한 조형 건축물을 공항 내에 짓고 있다.

그러나 공항을 빠져나와 일단 도심으로 들어가면 들어오는 것은 그 도시의 상징물이나 국가의 상징물이다.

바로 남대문이 서울의 상징이고 우리나라의 상징물임에 틀럼없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고 환경이 변화한 이 시점에서 남대문의 규모가 작다고 하여 남대문을 높이거나 다시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결방법은 남대문을 높게 보일 수 있도록 착시효과를 이용하면 되지않을까? 다시 말해서 주변의 높은 건물을 전부 남대문보다 낮게 지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땅값이 비싸고 건물세가 비깐 현실에 기업가나 건물주는 이윤을 극대화 하려고 하다보니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았겠는가? 보다 심각한 일은 서울의 고층건물이다.

경관을 무시하고 늘어서 있는 건물들은 보기에도 안 좋지만 여러가지 후유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이나 건물을 배치할 때, 적재소란 말이 있는데 고층건물을 지을때 건물이 입지해야 할 장소는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학교 앞의 높은 아파트 군상들, 아현동 로터리에 우뚝 솟은 신축 15층 아파트는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가? 서울의 교통문제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것도 원인을 생각해 보면 도심에 고층건물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토지 이용계획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를 보면 도심으로부터 4Km구역 내에서는 6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는 서울의 저밀도 아파트를 고도화 시키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이것이 실현되면 서울의 도시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은 틀림없다.

도시 개발에는 이익이 따르기 마련이나 보다 큰 문제는 경제 이익을 능가하는 사회 비용을 누가 지불하고 또 누가 배상해야 하는 문제를 우리는 잊고 있다는 것이다.

고층건물 문제는 도시 뿐 아니라 농촌지역에서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소도시나 읍, 면 지역을 지나다보면 10층짜리 아파트가 높은 언덕 위 곳곳에 세워져있다.

그렇다면, 이 고층건물이 야기시키는 지역과의 부조화에서 오는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까?다시 쉽게 이야기하면 불던 바람의 풍향이 바뀌고 그에 따른 식생의 변화 또는 조류등이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가? 도시·농촌 할 것 없이 경사지에 건물을 세울 때는 주변환경에 맞게 계단식으로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넓은 시야를 즐길 수 있지 않겠는다? 한강에 높이 솟아있는 아파트 군상들을 보라. 한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즐거울까? 그러나 고층 빌딩 뒤에 있는 낮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좋은 조망을 빼았기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이성을 찾고 보다 작게 보다 분수에 맞게 살 수 있는 지혜를 생각할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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