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문제를 바라보며

98년 노벨 평화상을 동티모르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조세 라무스오르타씨가 수상함으로써 한국에 알려진 동티모르. 1975년 인도네시아 군대의 무력침공 이후 20년이 넘도록 동티모르인들은 끔찍한 탄압과 인권유린을 당해왔으면서도 강대국들의 이익에 희생된 채 그 참담한 실상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20세기 마지막 식민지라고 불리는 동티모르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군도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제주도의 3배쯤 되는 티모르 섬의 오른쪽 절반이다.

이 섬에서 수백 수천년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티모르 사람들의 시련은 제국주의의 진출로 인해 서쪽은 네덜란드, 동쪽은 포르투갈 식민지가 된 16세기 말부터 시작됐다.

동티모르의 독립은 1947년 포르투갈 파시스트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야 가능했다.

포르투갈의 정치변화뿐만 아니라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요구가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백년 동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국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기쁨은 잠시였고 예전부터 동티모르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노려온 인도네시아와 그 배후의 강대국들간의 추악한 거래에 의해 곧 짓밟히고 말았다.

독립 다음해인 75년 12월7일 새벽, 미국 포드대통령과 키신저장관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고 떠난 직후 인도네시아 육해공군은 동티모르를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동티모르는 지리적으로 유럽과 동태평양을 연결하는 무역경로상의 중요한 길목이고 동티모르주변의 석유가 다량 매장돼 있어 이를 독점개발할 경우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동티모르 전문가들에 의하면 인도네시아가 이를 노리고 동티모르를 침공했으며 기묵과 호주, 유럽 등 강대국들이 암죽적으로 동티모르 침공을 승인했다는 것은 정부문서 등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열강들의 묵인과 지원아래 이루어진 이 침공으로 74년 68만평이던 동티모르 인구가 80년 5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평균적 인구증가율을 고려해도 약 20만명 가량이 살해당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 독립투쟁으로 단련된 동티모르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국제사회가 인도네시아의 이러한 만행을 보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침공초기 유엔은 동티모르 독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이후 강대국들의 의도적인 외면으로 동티모르는 지구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리워져 있었다.

한편 1991년 11월12일 평화시위를 하던 동티모르인에게 총부리를 겨누어 2백여명이 숨진 산타쿠르즈 대학살로 피투성이가 된 동티모르는 다시 역사에 나타났다.

이 끔찍한 사건은 마치 우리의 광주민주화항쟁과 같다.

당시 인도네시아 군인에 의해 무고하게 숨진 세바스티아오 고메스를 추모하기 위해 산타크루즈 묘지에 모인 수백명의 사람들의 행렬을 막고 선 인도네시아 군인들은 한마디 경고도 없이 대검을 꽂은 총을 쏘아댔다.

이날의 대량학살로 동티모르인 2백71명이 죽고 3백82명이 다쳤고 2백55명이 실종됐다.

사건 직후 군인들의 대대적인 검거로 동티모르인 수백 명이 구속됐고 그중 일부는 고문으로 살해당했다.

대학살 이외에도 75년 침공이후 현재까지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는 이루말할 수 없다.

동티모르인들은 가족중에 독립운동가가 있으면 모두 몰살을 당하거나 모든 것을 뺏긴 채 다른 섬으로 강제이주를 해야만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산에 살던 사람들을 산밑으로 강제이주시켜 동티모르인들은 중앙의 낮은 집에서 살게 하고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군인들은 그 주위에 고층건물을 지어 살면서 마치 감옥처럼 항상 감시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 농업에 기반을 둔 동티모르의 경제기반이 무너져 식량부족 현상을 가져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동티모르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해 동티모르인의 존재를 근본부터 없애려 한다는 것이다.

결혼한 동티모르 여성들에게 예방주사라면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주사를 맞게 하고, 남성들에게는 정관수술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또한 21세기 초까지 인도네시아인 6천5백만 명을 동티모르로 이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어 이후 지구상에서 동티모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이같은 만행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가 당당한 이유는 미국과 호주, 영국을 비롯한 유럽 중심의 서구 열강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석유, 고무, 주석, 목재 등 자원과 인도네시아의 군사정권에 폭격기 같은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챙겨왔다.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제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동티모르 사람들의 죽음이나 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노골적인 강대국들의 이익추구때문에 동티모르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다.

동티모르인들의 활발한 독립운동과 의지가 날로 높아지고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를 돕는 움직임에 어려움이 많다.

얼마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동티모르 문제에 관한 국제회의가 정부의 불허와 방해로 참가자들이 모두 추방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유는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같은 주변의 아시아 약소국가들과 인도네시아와 이해관계를 가진 강대국들은 동티모르 문제에 있어 항상 인도네시아의 눈치를 보며 발언을 하기를 꺼리며 인도네시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동티모르를 국제사회의 큰 이슈로 이끈 것은 살아있는 양심을 가진 인권운동가들이었다.

다행히 영국 기자의 노력으로 촬영된 잔인한 산타크루즈 대학살현장이 전세계로 방영됐고 이는 국제사회의 양심에 불을 지폈다.

동티모르 민중의 저항에 감동한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지원운동을 조직했고 인도네시아의 야만적 침략을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맞춰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1월12일 동티모르의 인권회복과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동티모르연대모임’이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다.

진정한 국제화·세계화는 무한자본의 논리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과 정의·평화와 같은 인류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모든 민족이 함께 동등하고 우호적으로 발전하는 공존공생의 길을 찾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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