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며

30년 철권통치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7월27일 수하트로 정권의 경찰과 군대, 그리고 정치깡패들은 인도네시아 민주당 (PKI) 당사에 있던 메가와티 지지자들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연행했다.

경찰의 폭력적 당사 접수 후, 자카르나틔 디뽀느고르 거리는 분노의 물결로 넘쳤다.

정부건물·은행·화교 소유의 자동차 전시장·경찰서 등이 불타고 항의 시위는 폭동으로 발전했다.

인도네시아 육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한달동안 계속되던 메가와티 지지 당원들의 저항 무기인 ‘자유연설운동’은 깃발을 내겼다.

이번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한 달전, 수마트라의 조그만 도시 메단에서 열린 PKI의 불법적인 전당대회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힘없는 국회의원에 불과했던 메가와티 당수가 수하트로에 대항할 만큼 대중적 인기를 얻자. 군부는 메가와티 거세공작을 폈다.

메단 정당대회는 메가와티를 친정부적 인물인 수르야디로 대체하려는 군사정부와 당내 친정부적 분파의 합작품이다.

대회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소도시에서 경팔의 삼엄한 경비속에 기습적으로 치루어 졌고, 이 전과정에 정부는 철저히 개입했다.

불법적인 전당대회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메가와티 지지 당원들은 당사에서 ‘자유연설’이라는 행동으로 정부에 맞섰다.

“우리는 메가와티를 지킬 것이다!” “메가와티는 승리할 것이다!” 한달동안, 당사는 숨주깅고 있던 인도네시아 민주주의가 다시 소생하는 현장이었다.

7.27 민주화 시위는 권력승계를 둘러싼 인도네시아 정치의 위기 징후이다.

위기는 인도네시아 정치의 모든것을 대표하는 수하트로의 절대권력이 흔들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

75세의 나이, 건강이상, 아내의 죽음, 마땅한 후계자의 부재, 강력한 정적의 출현,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로 인한 대중의불만은 수하트로의 절대권력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수하트로의 군부는 철저히 모든 민주주의적 논의와 실천을 말살시켜왔다.

정치적으로 인도네시아의 두 야당, 통일개발당(PPP)과 PKI는 정부의 감시와 후원아래 놓인‘반쪽야당’이다 야당은 선거기간 외에 일반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활동을 할 수 없으며, 선거 후보도 정부에 의한 자격심사를 받아야만 한다.

대통령의 선출도 마치 과거 우리의 유신 정권하에 있었던 체육과 선거와 비슷하다.

실제로 이제까지 수하트로 외에 대통령 수호로 나선 정치인은 없으며, 모든 야당은 자당의 후보선출을 포기하고 수하트로를 지지해왔다.

한마디로 수하트로 1인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구조이다.

모든 정치적 논의와 활동은 군부의 통제권하에 놓이며, 여기서 벗어나면 매카시즘의 세례를 받는다.

이번 시위에 대응하는 군부의 전략은 반대세력을 ‘새로운 스타일의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기층민중은 정치적으로 교육되고 조직되지 못한채, 체제를 직접 공격하기 보다 화교아 외국기업에 대하느 군중폭동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해왔고 94년에 있었던 메단 화교폭동도 이러한 정치구조를 반영하는 예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인도네시아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에도 불루하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부의 불평등과 부패이다.

특히 수하트로와 그의 가족에 의한 경제의 독점은 많은 인도네시아인의 분노를 사고 있다.

수하트로 자신과 그의 여섯자녀는 모두 절대권력을 배경으로 각종 이권과 특혜를 받발판삼아 모두 인도네시아 대재벌로 성장했다.

하나의 예로 기아가 참여하는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도 수하트로 셋째 아들 토미가 주도하는 것이다.

이번 시위에서 경제독점과 부의 불평등 문제가 직접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향후에 이것은 정치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마게와티 여사가 주장하는 PKI의 핵심적 강령도 대통령 임기제한과 수하트로 여섯자녀의 기업 해체이다.

7.27사태는 이와 같은 인도네시아 정치구조의 ‘닫힘’과 부의 ‘불평등’이라는 갈등구조를 단면적으로 표출시킨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던져주는 정치적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7.27사태는 그동안의 정치시위와 다르게 민주화 담론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폭동의 양상도 과거와는 다르다.

여전히 항의는 조직적 운동이 아닌 군중폭동의 형태로 디었지만, 과거와 같이 반화교폭동이라는 왜곡된 민족갈등으로 표출되지 않고 직접 정부와 군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대는 개다’, ‘군대는 살인자다’라는 구호가 이러한 변화를 암시한다.

이것은 과거 직접적인 정부 비판이나 항의를 주저했던 대중의 정치적 태도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전적으로 만주대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잇다.

오히려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음모의 정치’가 표출됐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잇다.

그것은 권력승계를 둘러싼 지배권련 내부의 갈등고 관계가 있다 수하트로를 에워싼 각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절대권력의 공백을 누가 메꿀것인가에 대한 다툼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 경쟁의 선두는 다름아닌 인도네시아 육군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군부의 ‘음모’에 적절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한달 동안의 자유연설운동 방치, 당사 접수를 위한 정치깡패의 동원, 폭동으로의 사태전개는 군부의전략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으로 군부의 행동은 하나의 선제공격이다.

이번 사태가 인도네시아 민주화에 어떻게 기여할 지 지금 단계에서는 예측하기 어렵고 한국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곧 무슨 일이 일어날 만큼 급박한 정치적 위기는 아니다.

아마 민주화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역사적 전진과 후퇴가 반복될 것이다.

이제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를 향한 기나긴 도정에 올랐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서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가 인도네시아 민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두 그것은 애정 어린 관심과 국제적 연대의표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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