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가 파업을 한다고? 큰일났다.

난리도 보통난리가 아니야. 출근걱정에 애를 태워야 하는 시민들은 불안하기 짝이없다.

그랬는데...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극적타결’에 ‘요금인상’이 나왔다.

작년과 똑같다.

운전사에게는 쓰디쓴 자조, 시민에게는 부담, 버스자본가에게는 이윤의 확대를 안겨준 결과였다.

‘구속불사’어쩌고 하던 투쟁지도부는 요금인상을 위해 해마다 반복된 ‘극적타결 파업쇼’의 주연을 맡아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파업을 한다면서도 스스로 ‘무노동 무임금’을 주장하고 아무런 파업준비도 하지 않고 뭐, 파업을? 회사측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히 따른 어용노조의 한계였다.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났던 87년. 버스노동자들도 억눌려왓던 자신의 요구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합원의 투쟁열기를 막을 수 없었던 파업지도부들이 파업을 선언한 순간에도 파업지도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조합원들은 차를 세우기도 했으나 정부와 자본측의 설득과 협박에 속수무책이었다.

잘 되는 곳 이래야 얼마 안되었고 그나마 새벽 첫번째 운행을 거부한게 고작이었다.

파업지도부는 파업준비도, 지침도 주지않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이들은 해마다 거르지도 않고 버스자본가와 함께 ‘파업쇼’를 벌여왔고 그 결과는 항상 판에 박힌 듯 ‘극적타결’과 ‘버스요금 인상’으로 귀결됐다.

군사독재 시절, 고급 군인·경찰·관료에게 상당수 불하된 버스자본은 정부의 허가제에 의한 무조건적이권보장, 버스교통수요의 급속한 증가, 도시의 확대에 따른 막대한 종점부지 등의 부동산이익 그리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병영적 통제를 통한 노동착취에 기반하여 현재 프리미엄만 해도 버스 1대당 5천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밤낮없는 적자타령에도 마을버스까지 점령해 가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버스자본가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국단위의 사업조합을 결성하고 노조측과 집단적인 교섭을 벌이고 있는 바, 버스의 공공성이라는 사회적성격에 따라 정부와 밀접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노조 집행부를 이권과 특혜로 포섭하여 노무과의 한 부서로 전락시켰다.

버스노조는 1961년 박정권이 결성한 산별노조인 전국운수노동조합으로 시작됐다.

이는 63년 버스, 택시, 화물을 포괄하는 전국자동차노동조합으로 분리됐고, 전두환정권의 초헌법적인 국보위에 의해 기업별노조 체제로 전환됐으며, 88년에 지도부 선출을 두고 지도부와의 마찰이 심각해지자 택시를 연합단체로 떼어내는 묘수를 발휘하여 현재는 버스와 화물 일부만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버스노조의 역사는 정부와 버스자본에게 조합원을 통제하는 대가로 막대한 특혜를 받아 노동귀족으로 전락했다.

버스노동자들은 소위 ‘삥땅’으로 임금의 부족분을 메꿔왔으나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자본가의 의도로 안내원이 사라지면서 더욱더 열악한 조건을 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장 조합원들은 직업의식이 거의 없다.

미미한 이익인 새차배차나 편한노선으로의 발령, 교통사고처리시의 편의 등을 통한 자본의 통제에 얽매어 그 의식수준이 극히 낮다.

더구나 노동과정이 운전사 개인의 판단에 의해 이뤄지기 대문에 동료간의 유기적인 노동관계가 없고 새벽가지 장시간노동에 시달려 노동자의식을 가질 여유는 고사하고 생존 그 자체에 매달리고 만다.

따라서 운전사의 사회적 지위는 지극히 낮아 어디가서 자신의 직업이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조건은 민주노조운동의 중대한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

민주노조운동은 극단적인 형태로서 분신자살과 포기 등의 좌우를 오락가락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민주화 부누이기에 의해 현장조합원들의 의식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고 이번 버스파업도 어용지도부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쇼의 재공연은 관객이 더이상 속아주지 않게 됐고 어용의 단꿀도 곧 바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민주화의 대세를 막을 힘도 근거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반납할리도 없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노조의 외곽에 잇고 힘든 조건이지만 이를 위해 버스노동자협의회가 8년전에 만들어 졌고 민주버스노조와 운수산별연맹을 전망하여 오늘도 힘차게뛰고 있다.

역사는 자유를 위한 인간의 열망은 아무도 막지 못했음을 증명했다.

버스노동자들 역시 자유를 원한다.

여러분이 생명을 맡긴채 타고 다니는 버스운전사를 보시라. 그 찌들린 얼굴에 맑은 웃음이 피어난다면 좀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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