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시민? 이기주씨의 요즈음애국시민? 이기주씨의 요즈음
애국시민? 이기주씨의 요즈음애국시민? 이기주씨의 요즈음
  • 이대학보
  • 승인 1991.0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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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시민? 이기주씨의 요즈음 S 파출소 차석 이기주씨는 그 바쁜 틈을 내어 오늘도 몇자 일기를 씁니다.

「4월 X일 연세대 시위 진압도중 솔잎(남자 대학생을 가르치는 은어)하나가 죽었다.

멍청한 자식들. 다시는 데모 못할 정도로 병신이나 만들지 죽여가지고 괜한 사건을 만드나 만들기는…」 대학들이 몰려있는 서대문구지구에서 근무하는 탓에 그는 요즘 삶에 대해 끔찍한 갑갑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녀석들이 공휴일이나 주말은 빠지지 않고 집회인지를 띄워서 집에 들어가는 건 생각도 못하고 평일도 새벽 6시쯤 출근, 밤 12시가 넘기 예사, 요즘같은 비상시기가 아니라도 일주일에 두번 집에 들어가는 게 보통인 것이죠. 이 짓 학를 벌써 8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갓 국민학교에 입학한 딸과 아내의 얼굴마저 가물거릴 지경입니다.

제길헐 먼저 XX지구에 있을 때는 말안해도 상납만 척척하는 장사꾼놈들만 있어서 좀 좋았나. 이노무 데는 대학생들만 몰려다니고 툭하면 「서」로도 화염병이 날아드니 빨리 이곳을 떠야지. 이거야 어디 인간이 할 짓인가. 이러다가 시위판에서 내 인생 끝날 거야. 요즘들어 무척 조급해집니다.

이런 이기주씨에게 조국 대한민국에 대한 자타가 공인하는 애국심이 없었다면 매일이 뻔한 이 과중한 업무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었겠죠. 『북한에 있는 것들만 빨갱이가 아니라니까. 빌딩척척 올라가지, 이젠 공돌이나 사람이나 다 88라이트를 필 정도로 평등해졌는데 뭘헛소리야. 제까짓걸들이 위에 계신분들 이리저리 고생하시는 것 아릭나 해. 국민소득 7백불에 이젠 소련 중공도 다 우리에게 손 벌리잖아. 이만큼 강대국이 되니 것이 다 누구 덕인데 학생놈들, 공장 부스러기 녀석들 바로 나라말아 먹을 놈들이야 이런 놈들은 몽땅 북한으로 보내버려야 사회가 조용해질텐데 그래야 내 인생도 필 날이 오지, 겨우 막아내기나 하는 온건한 정책이나 쓰고 있다니 한심하다』 이기주씨는 흥분한 채로 일기장을 넘깁ㅂ니다.

「4월 X일 오늘 같이 진압 보조하러 나갔던 김순경이 녀석들이 던진돌에 맞았다.

개자식들! 김순경은 피를 흘리며 휘정거렸다…」 이기주씨는 동료가 흘리는 피를 본 순간 끓어로는 증오를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총이라도 있었으면 갈겨댔을 심정이었스니다.

그러나 그를 부축하여 인근 종합병원까지 동행하며 『자네가 애국자네. 국민과 사회를 위해 이런 희생을 감수하는 자네같은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나라가 이나마라도 안정되어 있는 거지』라며 끓어오르는 증오를 같이 삭혀나갔습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향냄새가 진동하고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죽었지?』고개를 돌려보니 「고 강경대 열사…」라고 씌인 검은 천 밑에 가족들과 청년 몇몇이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스무살 한창 나이로 맞아죽은 청년이 쬐끔 안스럽게 느껴져왔지만 그의 우뚝 솟은 애국심이 그런 약한 감상과 죄의식을 밀어냅니다.

『쳇,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다친 학생들이 엎혀오고 실려가고 어수선한 중에 김순경을 병실에 눕히고 수속을 밟고 있을 때였죠. 『저어 형님 아 맞군요!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의 어깨를 친 사람은 잔치와 예식 때에서나 가끔 보는 사돈집 도령이었습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땀에 운통 젖은 채 동년배의 청년들과 숨을 헐떡이고 있었죠. 이기주씨는 순간 당황스러워 『그냥 지나가다가 누가 다쳤길래…』 『아 형님 이제보니 정말 훌륭한 애국심닌이시군요』 『아니 그게… 피 흘리고 쓰러져있는데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정말 감사합니다.

평님같은 분이 계시니 이 나라도 머지않아 제대로 될 겁니다』 하며 다친 친구를 부탁하고 사라졌다.

『수속만 해주시면 곧 돈을 모아서 돌아오겠습니다』 『그러니 기왕 시작한 일 둘이라고 다를까』 졸지에 타박상에 뒤범벅된 학생을 맡은 이기주씨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그러나 다친 학생의 감사의 눈빛에 멈칫거리며 궁색한 침묵을 깹니다.

『누가 감히 바른 말 하는 학생들을 이 지경으로 만드나! 그래, 가만히 있었나? 그놈들도 흠씬 두들겨 줘야지 않어!』 김은경 (국어국문학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