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엄존 아래 진행된 회담 자기모순 가져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는 통일의 주체인 남북한 7천만 민중이 통일논의에 참가할 수 있도록 적극 보장해야 합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던 지난 5일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이하 전대협)가 고위급 회담에 임하는 연형묵 정무원총리와 강영훈 국무총리에게 전달하려던 공개서한의 내용중 일부이다.

그러나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회담장소인 인터콘티넨탈 호텔로 향한 전대협 소속 6명의 학생이 전원 연행됨으로서 공개서한은 전달되지 못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결국 분단 46년만에 최초로 가진 양측 「고위급」만의 접촉으로 대화의 발판을 마련하였다는 의의를 남긴 채, 커다란 성과없이 지난 7일 끝났다.

이번 회담에서는 단지 서로의 입장을 열린 장속에서 국민들에게 왜곡됨없이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의제로 채택되었던 군사·정치적 문제와 UN가입문제 교류개방의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접근을 하지 못했다.

이는 남북양측의 판이한 시각차이에 그 원인이 존재한다.

즉 남한측은 기존의 논리를 되풀이하여, 신뢰구축을 먼저 이루고, 그 이후에 군사적 회담을 벌일 것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치하고 군축논의를 통해 미군철수와 핵무기 철거 등 군축을 실행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양측이 전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회담은 끝났다.

이번 회담의 성과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UN가입문제의 보류, 북쪽 인민무력부와 남쪽 국방부간의 직통전화개설 등은 그 성과물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고위급회담이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통일열기를 불러일으키는데 기여를 했다는 것 또한 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과와 의의를 가졌던 총리회담은 또한 많은 한계들을 남겼다.

북을 적대국으로 규정지어 놓은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있고, 방북을 감행했던 방북인사들의 석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이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로써 이번 회담은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통일은 전민중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4천만 민중의 의사수렴과정은 생략한 채, 정권의 의도대로 회담이 치루어진 것도 그 한계로 남는다.

「8·15 범민족대회」와 같은 민간차원의 교류는 창구단일화논리를 이용해 절대적으로 막으면서도 당국자간의 접촉만을 고집하는 것은 정권이 통일을 위해 회담을 진행시킨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번 남북회담은 통일의 실제적 장애물을 걷어 내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장기집권의 발판이 될 차기선거를 위한 노태우 정권의 이미지 전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논평했다.

회담에 임한 정권측의 자세를 본다면 워싱턴포스트지의 논평대로 정권은 이번 회담을 통일의 길을 트는 것으로 이용하기 보다는 자신의 장기집권책략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즉, 정권은 북방정책의 외교성과를 대국민선전에 이용, 「그래도 민자당은 북방외교 하나만은 건실히 해냈다」라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어 이후 대권을 잇는데 활용하려는 것이다.

또한 민중의 의사를 외면한 채 당국자간의 회담만을 이용해 UN가입의 문제를 「단독가입」으로 이끌어 분단상태를 고착화, 더이상 통일논의가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것일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지난 8월 28일 발표된 외무부 조직개편안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정권은 UN가입문제를 보류한다고 하면서 외무부 조직을 개편해 대 UN외교와 대공산권외교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현재로서는 UN단독 가입안을 제출한다 해도 올해안에 이 안이 UN 상임이사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정권은 소련·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UN단독가입안의 제출이 곧 승인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국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정권이 이번 총리회담의 성과로 내세우는 UN가입문제의 보류는 이와 같은 맥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정권이 이번 회담을 통해 꾀하는 것은 또한 통일논의 주도권의 안정적 확보를 통한 민간차원의 통일운동을 완전히 막으려는 것이다.

이는 회담기간 동안 나타난 민족민주운동세력에 대한 정권의 탄압에서 잘 알 수 있다.

정권은 4천만의 손님인 북쪽대표단을 마치 자신만의 손님인 양 독차지(?)하려하여 민족민주운동단체와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다.

즉, 지난 4일 북쪽대표단의 환영을 위해 임진각으로 떠난 20명의 전대협 대표중 18명을 연행, 북쪽대표단과의 접촉을 막았고 지난 5일과 6일 남북측대표단에 공개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회담장소로 찾아간 전대협·전민련 대표를 연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대협 산하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원회」(이하 학추위) 위원장 권오중군(연세대 총학생회장·화학·4)은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하지 않은 채 회담에 참가한 정권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고 밝혔다.

이에 전대협에서는 민간차원의 교류를 쟁취해내고, 실질적 통일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24~28일을 통일주간으로 선포할 것이다.

이 기간중 전대협은 25일에는 「콘크리트 장벽 참관인」을 구성해 실제 답사를 강행할 것이고, 26일엔 천개학과 방북투쟁준비를 위한 「남북학생교류를 위한 실무회담」을 진행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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