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과 학생운동의 과제

지난 6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범식 사태 이후 한국학생운동은 도덕성에까지 타격을 입으며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현 97년 하반기의 학생운동은 ‘한총련·학생운동 혁신’에 관한 논의의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운동의 모든 세력은 학생운동을 혁신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ㅗ총학생회 선거에서도 가장 큰 쟁점은 한총련의 혁신과 학생운동의 방향에 대한 입장이었다.

이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한총련 사수 및 혁신’과 ‘한총련 해체 및 시대적 마감’등이다.

그리고 선거결과는 주요대학에서 전자를 주장하는 NL계열에 비해 후자를 주장하는 좌파의약진으로 나타났다.

사실 한총련의 혁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총련은 진정 혁신된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한총련은 93년이후 지금까지 줄곧 ‘김영삼정권 타도’를 외쳐왔고 친북적 통일운동에 기반한 범민족대회를 올해까지 매년 개최했다.

그동안 한총련 주류는 위기의식을 느낄때맏 한발짝 물러나서 ‘혁신’과 ‘학우중심’을 외치고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민주주의 투쟁에 주력했다.

94년 주체사상파 파동으로 한발짝 후퇴했다가 95년 5·18투쟁으로 부활했던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올해 범민족대회에서는 오히려 극단적인 양상이 나타났다.

작년 연세대 사태에 이은 올해 한총련 출범식 사태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총련은 범민족대회를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이제 한총련은 표면적이나마 혁신의 노력마저 포기한 듯 하다.

한총련의 주류인 자주대오는 이번 선거에서도 혁신을 외치긴 했다.

한총련 투쟁이 실패한 원인을 ‘각 대학의 기층간부 일꾼들이 제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다시 한번 ‘간부혁신’의 구호를 외치고 새로운 제2세대 한총련의 건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혁신이 이런 식으로는 될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지난 9월5일 ‘민주화실천을 위한 교수협의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공동주최로 열린 학생운동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은 “학생들의 통일운동은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결여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남한사회의 현실적 모순에 근거하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이처럼 한총련의 위기의 일차적원인이 자주대오의 친북적 운동이라고 규정한다면 자주대오는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97년 6월 항쟁이후 학생운동진영은 안정적인 총학생회 연합체인 전대협-한총련을 건설, 이를 통해 오늘날 각급 학생회질서의 안정된 대의체계와 집행체계가 마련됐다.

이에 학생회가 가긴 공개성과 대표성의 힘이 가장 크게 발취됐다.

그러나 이 시기의 운동은 한총련주류의 남한 민중들에 기반하지 않은 친북적 운동으로 인해, 정권으 탄압과 그리고 더 중요한 요인인 스스로의 모순으로 인해 생명력을 다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전대협-한총련 11년의 역사에서 처음있는 선거결과로써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서 동시에 좌파가 당선됐다.

그동안 한총련 주류에 비해 항상 소수파로만 존재하던 좌파학생운동이 주요 대학에서 대거 당선되면서 내년도 학생운동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좌파학생운동은 전대협-한총련 시대에 이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시기로 도약하기 위한 한국학생운동의 과제는 막중하다.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올해 내내 논의됐던 학생운동혁신의 ‘구체적 미래상’이다.

구체성이 없는 혁신의 구호들은 일반 학생들에게 공허하게 들리기만 할 뿐이어서 결국 학생운동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학생운동의 투쟁성’이다.

올해 한총련 출범식 때의 이석-이종권씨의 치사사건으로 인한 폭력성의 문제로 말미암아 학생운동 혁신의 화두는 ‘비폭력·과격투쟁 자제·선도성 폐기’등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이라한 접근은 학생운동이 방어적 폭력에 치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이 과도하게 부각됨에 따라 그동안의 학생운동의 전통과 선도적 역할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이외에도 한국학생운동의 과제로는 ▲친북적 운동을 벗어나 남한민중에 근거하는 한국학생운동의 자주성 회복 ▲다수파의 독점과 패권으로 특징지어지는 한총련 시대의 민주주의의 획기적 전진 ▲환경·성·문화·정보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억압에 맞는 운동의 개척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한국학생운동은 이제 이러한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