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한국의 방송 보도

우리가 즐겨보는 방송은 국민의 방송이 아닌 권력의 방송이요, 대통령의 방송이다.

시청료를 꼬박꼬박 내며 보는 KBS나 광고료를 최종적으로 부담하며 보는 MBC나 SBS 모두 마찬가지이다.

전파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식에서 당연히 방송의 주인도 국민이라는 논리는 이론적으로만 맞는 얘기다.

현실에서 방송은 권력의 도구요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기능한다.

방송이 권력의 것이요 대통령의 것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태가 발생했다.

11일MBC는 당정개편을 예측하는 보도를 내보냈다.

MBC가 단독취재한 내용이라며 의기양양해서 보도한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정부와 신한국당이 대폭의 개편을 통해 본격 대선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것으로 대권을 포기한 최형우 의원이나 김윤환 의원이 당 대표를 맡고 이홍구 대표는 대권후보군에 합류한다는 것. 그리고 대권주자들은 상호경쟁을 통해 대권후보로 부각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청와대는 비서실장에는 이원종 정무수석이, 안기부장에는 초원복집의 주인공 김기춘 의원이나 김우석 내무장관이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뒤늦게 보도내용을 전달받은 김영삼 대통령은 ‘격노’하여 MBC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뉴스데스크는 사과 방송을 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법 위에 존재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은 왜 그처럼 화가 났으며 제4부로서 정부의 감시자여 할 MBC사장은 왜 그렇게 쩔쩔매도 다음날 바로 사과방송을 해야만 했을까. 화를 낸 이유는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깜짝쇼를 즐기는 대통령 입장에서‘천기’가 누설된 데 대한 허탈감이 그 하나요, 전혀 사실무근의 보도로 심기를 불편하게 한 데에 대한 증오감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자연인이 아닌 대통령의 신분으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대통령이 방송사 사정에게 호통을 치고 정정보도를 강요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MBC의 당정개편 보도는 그렇게 질타받고 사과해야 할 내용이 아니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이고 국민적 관심사라는 차원에서 즉 알 권리의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보도내용이 사실과 달랐다고 해도 방송사에 책임을 물을 사안은 전혀 아니다.

만일 그럴 경우 언론의 자유, 취재보도의 자유가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일로 가뜩이나 위축되어 있는 언론의 자유가 더더욱 움츠러들 것으로 보인다.

누가 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내용을 보도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 한다고 추켜세우는 데 급급할 뿐이다.

방송에서 비쳐지는 대통령은 전지전능한, 절대 우를 범하지 않는‘성군’의 모습일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사장의 태도이다.

그 내용을 취재해서 보도한 기자의 확인도 없이 사과방송을 했고 담당기자는 사과방송에 대해 강력히 항의 했다고 한다.

MBC사장은 대통령이 점지해서 임명한다.

KBS 사장도 마찬가지이다.

방송사 사장의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쥐여 있다는 얘기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된다.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한다.

시청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건전한 오락을 제공하는 방송이 아니라 권력자의 구미에 맞는 방송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은 언제나 정부 여당에 유리하게만 보도하며 그 같은 보도는 선거때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사권을 핵심으로 하는 방송제도의 맹점을 개선함으로써 방송을 권력의 품 안에서 국민의 것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시도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왜냐하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가 방송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안으로 국민주 방송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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