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성에 대한 비난과 재정난 딛고 클럽 연대로 부흥 꾀해 …

90년대 홍대·신촌의 거리는 클러버(클럽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그루브’로 생기가 넘쳤다.

그러나 10년이란 시간을 거쳐온 클럽문화는 유흥적인 측면이 많이 부각되고 심각한 재정난을 겪는 등 재정비해야 할 부분이 많이 생겼다.

클럽데이 때마다 댄싱클럽을 찾는다는 이은정(24세)씨는 “어떤 남자들은 무대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들을 보면 허리를 안으며 유혹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 때문에 클럽이 퇴폐적으로 변할까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디밴드들의 데뷔와 활동의 주 무대던 라이브클럽은 음식점으로 분류돼 2명 이상이 하는 공연과 스탠딩 무대를 열지 못하게 해 많은 관객을 잃었다.

99년도에 규제는 풀렸지만 그 때 사라진 관객들은 지금까지도 찾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 학교 앞 퀸라이브홀 이문식 대표는 “수익을 벌어들이기는 커녕 겨우 클럽을 유지해 나가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라이브클럽의 불황은 밴드에게도 이어진다.

허키클럽(남성5인조 하드코어 인디밴드)의 리더 김현수(보컬)씨는 “공연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연습실 빌리는 돈조차 부족한 실정이다”고 말했다.

클럽에서 탄생하던 젊고 신선한 예술인들이 클럽 불황과 함께 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클럽들은 자체적·연대적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빵·퀸라이브홀·슬러거 등의 클럽들은 2002년 라이브 클럽연대를 결성했다.

올해 2월 ‘라이브 클럽 페스트 Vol.1’ 공동음반을 제작하고 매달 넷째주 일요일에는 ‘라이브 페스티발(클럽 소속 인디밴드들의 공연)’을 여는 등 클럽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연대활동 뿐 아니라 라이브 클럽 자체를 개선하는 노력도 많이 보인다.

DGBD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두 클럽 드럭·블루데빌이 합쳐진 것으로 음향시설을 보완하고 좌석 수도 늘려 작년 12월 새로 문을 열었다.

또한 작년 11월 문을 연 신생클럽 사운드홀릭은 변화하는 젊은이들의 문화에 맞춰 라이브 무대와 댄싱무대의 복합구조로 기획됐다.

사운드홀릭 송마야 대표는 “공연 뒤 바로 자리를 뜨기 아쉬운 관객들을 위해 그 여운을 풀 수 있는 스탠딩 무대와 바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홍익대 주위의 클럽들은 2000년 3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클럽데이를 열어 1만명이 넘는 관객을 댄싱무대로 끌어들였다.

테크노·록·재즈·힙합 등 다양한 음악전문 클럽들은 넥타이부대에서 편안한 트레이닝 복 차림의 사람들까지폭넓은 취향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한 클럽문화는 술마시는 것이 놀이문화의 대부분이던 젊은 사람에게 적은 돈으로 음악과 유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라이브 클럽들은 그간 윤도현밴드·체리필터·크라잉넛 등 음악적 역량이 있는 밴드들을 배출해 내 국내 음악계의 ‘인큐베이터’역할을 했다.

이처럼 클럽은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놀이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비주류 음악인이 관객과 소통하는 창구다.

지상의 무대에서 다 풀지 못한 음악문화를 풀어낼 수 있는 ‘지하의 클럽’, 그 곳을 젊고 건강한 열기로 다시 채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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