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음악, 여성운동 넘어선 대안적 여성성 제시…정의·비평 아직 일러

‘내려오지마 이 좁고 우스운 땅 위에/내려오지마 네 작은 날개를 쉬게 할 곳은 없어/가장 아름다운 하늘 속, 멋진 바람을 타는 너는/눈부시게 높았고 그것만이 너다워…’-이상은의 노래 ‘새’ 중. 이 땅위에 날개조차 쉴 곳이 없는 ‘새’는 하늘로 올라가 ‘나 다움’을 찾는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노래 가사 속의 새의 모습은 타성(他性)이 규정지은 껍질을 깨고 자아를 찾는 이 땅의 ‘여성’들과 닮아 있다.

‘여자’ 혹은 ‘여성’이란 단어가 쓰여야만 여성음악이 될 수 있을까? 보통 여성음악하면 지현이나 안혜경과 같은 페미니스트 가수들의 음악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2년 전 여성음악 콘서트 ‘여악여락’을 기획했던 박애경씨는 대중음악에서의 여성음악을 “여성의 목소리로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음악적 어법으로 노래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현재 대중가요의 인기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녀 그룹들의 음악은 ‘보여주기’에 급급해 음악적인 주체성 없이 제작자나 작곡가들이 시키는 대로 불려지는 것들이 많다.

사랑을 애원하고 기다림에 지쳐있는 것이 ‘여성적 감성’이라는 가부장제 사회가 규정한 틀은 결과적으로 여성 정체성의 왜곡을 낳았다.

이와는 반대로 이상은과 한영애의 음악은 그들이 자신을 ‘여성음악가’라고 규정하지 않았지만 여성적 감성에의 호소가 아닌 뚜렷한 정체성 위에서 형성됐기에 여성음악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그들은 여성운동이 목표였던 기존의 페미니스트 음악과는 다르지만 자신의 음악안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정확히 인식함으로써 대중음악에서의 대안적 여성성을 제시하는 차별점을 지닌다.

특히 박애경씨는 한영애의 음악에 대해 “자연 친화적 메시지, 세상을 섬세하게 응시하는 따뜻한 시선과 여신의 이미지는 관습적인 여성의 모습을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여성성을 표현한다”고 전한다.

대중음악에서의 여성성과 여성음악인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첫시도였던 2000년 ‘여악여락’ 콘서트는 그들을 눈요기 상품으로만 여기고 있던 이제까지의 주류 음악판에 일침을 가했다.

이는 ‘오빠부대’ 또는 ‘빠순이’로 치부되던 여성 관객들과 여성음악인들이 연대하고 교감한 첫축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음악 축제는 현재 ‘생명음악회-떨림·느림·살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23일(목) 경동교회에서 열렸던 ‘생명음악회’는 여신의 힘이 곧 여성의 힘이라고 노래하는 제니퍼 베레잔과 첼리스트 제이미 시버의 명상음악이 처음 소개됐다.

지금까지의 페미니스트 음악이 저항하면서 도전하고 주체를 세워나가는 강한 여성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제니퍼 베레잔과 제이미 시버가 부른 ‘She Carries Me’의 메세지는 ‘이 세상의 모든 울음 소리를 듣는 그녀’를 통해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영적인 여행으로 상처받은 여성의 자아를 치유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는 “소녀들의 사랑이나 고난을 이겨낸 여성들의 모습 등을 노래해 자매애가 분명히 나타나면서 자연에까지 연대적 감성이 뻗친 음악”이라고 평하며 음악적 의의를 설명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여성음악은 한 색깔로 모아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다’할 정의와 그에 대한 평가를 하기엔 이른 시점이다.

대중음악비평가 박준흠씨는 “여성음악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음반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므로 정의가 분명치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음악 생산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인디음악 체제조차 여성음악이 ‘열등한 것’이라고 폄하돼 일부 여성 밴드들이 ‘여성음악 밴드’라고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등 여성음악에 관한 모순적인 가치관 차이도 여성음악의 정의를 분명하게 내리기 어렵게 한다.

이처럼 여성음악은 여성운동을 위해서나 혹은 음악적 장르로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같은 흐름에 맞춰?“여성음악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는 이혜경 대표의 말처럼 여성음악이 제대로 자리잡기 위한 탄탄한 터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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