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짙게 풍겨오는 책향, 천장에 닿을듯 말듯 책장 꼭대기까지 쌓여있는 누런 종이의 책들…. 오래된 헌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이미지다.

헌책방 구석에서 발견한 오래된 교과서를 보며,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와 같이 독특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헌책방의 매력은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는 점이다.

신간 도서라 하더라도 정가의 반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되고 있고 그 외에는 거의 대부분 1/3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가격측정에 어떤 일률적인 기준은 존재하지 않아 오랜 헌책방 경영 노하우를 가진 주인 ‘아저씨’·‘아줌마’와의 도서가격 흥정은 손님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연세대 앞에 위치한 ‘정은 서점’의 주인 정재은씨는 “가끔 학생들이 와서 돈이 조금 모자라 책을 못사는 경우가 있으면 가진 돈만 받기도 한다”며 “이런 것이 헌책방의 소소한 멋 아니겠느냐”고 전한다.

홍대 앞의 ‘온고당 서점’은 많이 산 사람들은 깎아주기도 하고 단골손님을 조금 더 배려해 다른 서점과 달리 아예 책 뒤에 정가를 붙여두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큰 가치를 두는 것이 최근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이고 보면 값이 싸다는 것만이 헌책방을 찾게 하는 이유는 아니다.

서울의 헌책방을 찾아 일부러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고 헌책, 헌책방 매니아라는 문화적 코드가 성립한다는 것은 헌책방이 단순히 값싸게 책을 파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을 입증한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매력은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여러 서적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과 더불어 과거의 주인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이 밀집해 있는 신촌 근처의 헌책방들은 다 각기 그 서점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정은 서점’은 가장 오래된 만큼 해방 이전의 책부터 신간 서적까지 다양하고 많은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33년간 헌책방을 경영한 주인 ‘아저씨’의 손길로 인해 책분류가 잘 돼 있고 고서점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주로 인문학·문학작품·사회·예술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고 있는 서점 ‘숨어 있는 책’은 가장 최근에 생긴 만큼 깔끔한 내부에 항상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운이 좋다면 주인 아주머니가 타주는 커피도 한 잔 얻어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어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온고당 서점’은 그 규모면에서 헌책방 중 으뜸이라 할 수 있고 건축·예술·디자인·사진 서적이 많다.

1층은 비교적 정리가 잘 돼 있지만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지하공간에서 ‘보물찾기’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2층의 커피숍은 서점을 구경하다 식사를 하거나 책을 읽기에도 좋다.

‘숨어 있는 책’의 주인 아주머니는 “헌책방에서는 어떤 특정한 책을 꼭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몇 곳을 돌아다녀도 그 책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둘러보다 눈에 띄는 ‘숨어 있는 보물’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올 여름 지루한 장마에 헌책방을 찾아 다른 누군가가 적어놓은 잡담 한줄, 누렇게 바랜 책장을 발견하는 ‘보물찾기’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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