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공간, 기획자 부재,경제적 어려움으로 전시회 질 보장 못해

미술계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미술관·갤러리·화랑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전시회 역시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판매는 하지 않고 전시만을 하는 미술관, 전시를 중심으로 하지만 판매도 가능한 갤러리, 작품의 판매를 위해 생겨난 화랑은 각기 성격이 다르지만 우리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모호하다.

그나마 몇몇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대관을 하지 않음으로써 화랑과의 차별점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이같은 곳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가운데 중간 판매상 역할에 그치는 화랑은 늘어가고 유지를 위한 전시회도 늘어간다.

이러한 전시회는 개인이나 단체에게 돈을 받고 화랑을 빌려주는 대관전이 대부분인데 이는 큐레이터가 주제를 잡고 작품을 엄선한 기획전에 비해 전시회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화랑이 대관전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술계에서 입소문이 난 전시나 언론을 통해 부각된 전시, 이벤트 성의 전시 등 인기있는 전시에 속하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전시가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는 일은 전시공간이 지니는 최대의 문제점이다.

‘갤러리 사비나’의 큐레이터 이영훈씨는 “대관전이 야기하는 문제점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라며 작가는 경력에 한 줄을 보태기 위해, 갤러리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는 대관전이 갤러리와 작가만의 전시에 그치는 것을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화랑들의 경제적인 상황과 가장 큰 관련이 있다.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여러 화랑들이 문을 닫았다.

그 중 살아남은 화랑들은 스스로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대관이라는 방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웹진 ‘미술과 담론’의 김찬동 편집장은 “전시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재원·예산이 늘어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며 “상업 화랑들은 질낮은 대관전이라도 해야 겨우 운영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루프’·‘사루비아 다방’과 같은 대안공간의 경우 문예진흥기금을 통해 전시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인사동의 화랑은 대관료가 없으면 운영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현실이 이러한 가운데 자금난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갤러리 사비나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갤러리를 인사동에서 대관료가 싼 안국동으로 이전하고 교육강좌 등 몇 가지 수익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대관전과 개인전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전시기획자의 부재이다.

현재 전시공간에는 전시기획을 담당하는 큐레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안공간 ‘루프’의 큐레이터 황진영씨는 “전시회의 질은 기획자의 역량에 달린 것”이라며 “젊은 독립 기획자들에 의한 기획전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상황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곡미술관은 기획자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 몇 가지를 마련하고 있다.

성곡미술관 본관에서 여는 성곡미술기획대상 공모전은 기획자들에게 상금을 주고 전시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별관에서는 대학·대학원생 등의 학생 기획자들을 위한 인턴전을 연다.

성곡미술관 큐레이터 최은하씨는 “기존의 갤러리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마련한 공모전”이라며 “대학에서도 기획자들을 위한 과를 신설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프랑스·로마·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등 미술이 호황을 누렸던 때는 경제적인 스폰서가 확보돼 활동기반이 안정된 상태였다.

이렇듯 김찬동 편집장은 “좋은 전시가 많이 만들어지려면 기획자의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가 수용 가능한 전시장, 전시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맞아야 한다”며 “이는 경제적인 구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가적 차원의 공간 확보와 큐레이터 육성 교육 등의 거시적인 대책은 현재로서는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다.

전시공간의 문제는 ‘문제’라고만 인식하기 보다 경제 발전 속에서 안정될 수 있는 문화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전시문화가 안정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려는 노력의 자세가 기획자·관람자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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