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오즈의 마법사’를 기억하는가? 토끼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현실이 아닌 환상세계를 여행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 소설은 현재 붐을 일으키고 있는 판타지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로 이어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반지의 제왕’의 흥행은 판타지 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상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거나 생각하는 것이라면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다.

판타지는 이러한 상상과 환상을 접목시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세계를 현실로 끌어들인다.

인간보다 우월한 종족이 등장하거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등 비현실 가상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안식처가 됐던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의 판타지 문학은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마법에 중점을 둔 경우가 대부분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그 전형성을 드러낸다.

우리에게 친숙한 이우혁의 ‘퇴마록’은 동양적인 소재인 기(氣)·귀신 쫓는 의식·주변에서 일어나는 해괴한 일을 다룬 한국식의 전설과 환상을 바탕으로 변형된 판타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 문학은 90년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98년부터 연재돼 30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드래곤 라자’와 영화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퇴마록’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판타지 문학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작가를 낳았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다.

이에 대해 계간지 ‘리얼판타’의 유문호 편집장은 “인터넷이라는 매체 자체가 현실에 없는 만들어진 사이버 세계라는 것이 판타지의 특성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라고 판타지 문학의 성장 배경을 설명한다.

판타지 문학이 이렇게 커다란 유행을 타고 있는데 대해 연세대 정과리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과거에 대학생이 중심이었던 문학수용축이 고학력 주부와 청소년 층으로 양극화된 것과 문화사업가들의 상업적 문화사업 추진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며 “양극화 현상속에서 문학 수용의 중심축으로 부각한 청소년들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한 것”이라고 전한다.

영화, 게임으로 제작되면서 일반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판타지 문학이지만 한편에서는 문단의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의 판타지 문학은 약자의 성공스토리가 주를 이루는 서사판타지 문학이 주류이고 그 중에서도 ‘드래곤 볼’ 식의 일본 만화를 모방한 것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현상을 정과리 교수는 “우리의 판타지 문학은 편식증에 걸려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편식증은 문단의 상업화로 이어져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인터넷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품활동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작품들의 대부분은 끝맺음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학의 본분인 메세지 전달이나 철학적인 논의를 배제한 채 쓰여지고 있다.

이는 ‘시간 죽이기’식의 일회용 소비문학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드래곤 라자’의 작가 이영도씨는 “판타지 문학이 진정한 문학으로 자리잡기 위해 거쳐가야 할 하나의 과정일 뿐”이라며 “이러한 글쓰기가 판타지 문학의 질적 성장의 가능성 정도는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비판을 일축한다.

현재 판타지 문학의 인기는 최고를 달린다.

하지만 판타지 문학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붐을 통한 상업적 성공이 아닌 ‘건전한 중간 독자층의 형성’이라고 사이트 판타지그래퍼(www.fantasygrapher.com)의 칼럼니스트 최현동씨는 주장한다.

즉 모험담만을 쫓지 않는 고급적이고 세련된 문학적 취향을 가진 지적 독자층이 형성돼야 판타지 문학이 일회용 오락물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독자의 진정한 비평만이 출판사와 작가에게 바른 창작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나혜연 기자 skyyeon@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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