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만화전 ‘2001 노동만화의 오늘과 내일’을 보고

‘화려하지도 가꿔지지도 못했지만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수수하게 피어나는 들꽃처럼, 우리의 주변 곳곳에는 이웃들과의 공감 속에 소박한 목소리가 담긴 만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 우린 이런 들꽃같은 만화를 ‘노동만화’라고 하려합니다.

- ‘노동만화 네트워크’의 출범 선언문 중에서 ‘2001 노동만화전 오늘과 내일’이 17일(토)∼24일(토) 일주일간 서울청소년 직업체험센터 하자에서 열렸다.

노동만화전은 시대전·판화전·캐릭터 모음전과 작가전 등으로 전시됐고, 그 외 애니메이션 상영회·만화 슬라이드 상영회로 관심을 모았다.

80년대 민중문화 운동의 한 부문으로 시작됐던 노동만화는 노동자들이 혹은 노동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현장 지원을 하면서 자신이 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를 그림으로 그려 회사 노보나 소식지, 포스터 등에 실려왔다.

노동만화가 김현숙씨는 “노동만화는 단순히 현장의 노동자들이 그리는 ‘메세지’가 담긴 만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형식의 구분없이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을 다루는 것은 모두 노동만화”라고 전한다.

즉, 노동만화는 지금까지도 가장 현실적이면서 알기 쉽게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 열린 노동만화전은 이제껏 소식지나 노보에 실렸던 익명의 그림들에 ‘노동만화’라는 이름을 붙여 하나의 장르로 정착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볼 수 있다.

그간 노동만화의 활동성과가 한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이번 전시회는 조사 중 작자미상이 너무 많아 작가가 누구냐를 찾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노동만화전 최문선 조직재정팀장은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 투쟁을 기점으로 그 이전의 노조운동이 비합법적이었기 때문에 노동만화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죄가 됐었다”며 “그 이후 합법적이 됐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작품은 대부분 익명으로 그려졌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노동만화전은 시대전에서 87년 6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 투쟁, 90년 전노협 건설과 95년 민주노총 출범식, 97년 노동법 개정 투쟁 등을 시대 구분의 가장 큰 기준으로 두고 시대별 만화들을 전시했다.

또한 캐릭터전에서는 노동만화의 역사에서 대표라 할 수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를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이 어떻게 변천돼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줬다.

거칠고 굵은 선으로 민중들의 삶의 굴곡을 잘 표현했던 판화전에서는 ‘주름진 얼굴의 소주잔을 든 남자와 미싱 앞에 앉은 여인’을 드러내며 힘든 삶을 이겨나가는 노동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같은 노동만화전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노동만화의 변화다.

과거의 노동만화의 작가는 사업장이 비슷하고 전문화되지 않은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작가의 필체나 특성이 엇비슷했다.

한겨레 그림판을 그렸던 박재동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박재동 식의 만평이 많았고 일간지의 4컷 만화를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노동만화의 역사를 구분짓는 사건들을 거치면서 노조의 영향이 커지기 시작하고 연재물과 장편이 많아졌다.

그런만큼 현재는 노동만화가 개인의 개성과 특성이 강해지고 인터넷 웹사이트·여러 소식지 등을 통해 독자층도 형성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대중문화에도 어필하는 만화가 많이 그려지는데 그 속에는 패러디와 같은 기법이 많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1층 전시장에 있던 가을 동화를 패러디한 작품은 부실기업을 노동자는 땀을 흘리고 부실 기업은 노동자에게 ‘너 죽으면 나도 죽는기라’라는 말을 하며 협박하는 비판이 담긴 재치를 보여준다.

이처럼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주목받는 노동만화에 대해 최문선 팀장은 “노조운동이 과거에 비해 치열하지는 않지만 노동상황은 더 어려워진 것이 현재 우리의 실정이다.

여러 문제점을 지닌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비판의식은 더욱 커져가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한다.

파괴적이고 자극적인 미적 표현이 주류를 이루는 만화 현실 속에서 비판정신과 친근함, 따뜻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설 노동만화는 바로 내 삶을 닮은 민중예술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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