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술전시, 책 잡지 등에 등장, 문화적 도구로 새롭게 인식

a누군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했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이뤄지는 수많은 일들…. 비슷하게도 우리 주변의 낙서들은 ‘벽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려지고 쓰여지는 것은 아닐까? 낙서(落書): 벽이나 여백이 있는 공간에 상스럽거나 익살스럽거나 장난스러운 내용의 짤막한 글 또는 간단한 형태의 그림을 아무렇게 마구 쓰고 그리는 것. 그 글이나 그림. “7∼80년대의 낙서는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낙서 안에서조차 집단적으로 편을 가르는 정치적 색채를 띄었지만 90년대 이후의 낙서는 개개인의 사소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평택대 김용희 교수(국어국문학 전공)의 말처럼 낙서는 내용·형식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우리 생활 주변에 존재한다.

벽 혹은 화장실·강의실의 책상 등 우리 주변 어느 공간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낙서는 ‘일상과 함께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최근의 낙서는 이러한 시선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다.

개인의 단순한 끄적거림을 벗어나 당당히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각종 무가지 잡지나 포스터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도구로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10월10일(월)∼13일(목) 홍익대에서 열리는 ‘거리미술전’을 들 수 있다.

거리를 지나는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하나의 ‘낙서 작품’만드는 공간을 마련하는 이 행사 안에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낙서 전시도 있다.

홍익대 거리미술전 최정민 부기획단장은 “청소년들의 연예인 이야기조차 일상의 예술문화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낙서는 또한 하나의 테마를 만들어 ‘책’의 형태로 독자와 만나기도 한다.

시각디자인 아트북 출판사 ‘601비상’은 지난 3월 우리 학교 시각디자인과 4학년 학생들의 제안으로 ‘낙서’를 주제로 한 ‘2note’를 출간했다.

이 책은 ‘개인의 끄적거림’으로 치부되던 낙서를 시간과 공간으로 확대해서 해석하여 비주얼한 면에 초점을 두고 제작됐다.

기획을 담당한 박금준 팀장은 “넓게 보면 사람이 사는 흔적 자체가 낙서”라며 “일부러 기획 의도를 독자에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독자가 타인의 낙서를 통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사람 몸의 ‘문신’이나 도로의 표지판 등이 훼손된 모습조차 낙서의 범주로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홍익대 거리미술전 최정민 부기획단장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일기장이나 수첩을 내용으로 하는 최근 전시에 대해 “형태 뿐만 아니라 낙서에 대한 사고·인식의 변화를 내용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물 자체가 평면 위의 낙서인 ‘회화’와 양감을 가진 ‘수첩’이 물리적으로 결합한 형태를 나타내 낙서 자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호는 힘이 세다」의 저자 평택대 김용희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하류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주류에 속했던 낙서조차 개인성과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흐름에 따라 폭넓게 용인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예를 들어 이화광장의 찬반 설문조사와 도서관 화장실의 낙서는 같은 주제일지라도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공개된 이화광장의 찬반 설문조사는 개개인의 생각을 한 데 모아 집단의 말로 의견을 표출하지만 도서관 화장실의 낙서는 이를 다양한 개인들의 견해 자체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비는 혼자있는 공간과 개방된 공간 사이에서 낙서가 수용자의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새로운 통로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주변에 새롭게 다가오는 일상의 낙서, 무심코 끄적이는 나의 모습에서 낙서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배윤경 기자 ykcult@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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