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금) ‘문화학과’협동과정에서 일전 조촐한 학술행사를 마련했다.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형·한국 문화연구의 자리 찾기’가 그것이다.

‘문화학과’ 협동과정은 그동안 각계에서 문화연구를 하던 이들이 격의 없이 모여 토론과 강연을 하는 자리이다.

이번에 열린 학술제는 처음으로 문화연구로 학위를 받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동안의 문화연구에 대한 반성을 갖는 기회였다.

문화연구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문화연구는 엄연히 ‘스타’학문이 되었다.

‘문화연구’나‘문화학’이란 이름으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여러 분야에서 적용돼왔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90년대부터 특별히 붐을 이룬 ‘문화평론’이란 글쓰기는 문화연구의 잠재적 형태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무관심의 대상이던 문화가 갑자기 주목을 받으면서 이런 글쓰기가 대두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문화평론은 문화가 사회에 대한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냄에 따라 발생한 형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90년 후반 문화연구라는 학문이 대학에서 느닷없는 명성을 얻었다.

이는 무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대개 서구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고 돌아온 유학파 직식인들이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문화연구에 끌어온 것과 관련 있다.

이미 대개의 인문과학은 학문적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 왔고, 일부에서는 이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문화연구를 지향하여 왔다.

이는 단순히 몇몇 학문 장르가 문화학으로 전신하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외려 각 학문들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황에서 경계 넘나들기가 불가피한 상황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의 경계가 유연해지는 것은 또한 각 학문들의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문화연구가 학문들 간의 평화로운 협력이 아닌, 협상 정도를 만들어 가는 프로젝트에 그쳤던 것도 이 탓이다.

그렇지만 문화연구의 급작스런 성공이 대학을 비롯한 지식과 교육 제도를 동요시킬 만큼의 큰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문화학과’설립은 그간 문화연구가 미친 영향과 효력에 비추면 뒤늦고 또 초라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학과’의 설립이 굳이 불필요해질 정도로 지식과 교육의 장이 변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각 대학과 대학원들은 문화산업이나 문화행정, 문화영역과 관련된 여러 전문학과를 만들고 있고 대개의 인문사회과학은 문화연구가 내놓은 문제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있다.

굳이 문화연구가 자신의 영지를 확보하고 지식의 집을 지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문화연구는 여전히 기존의 지적 담론에 비판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역활을 할 수 있고, 또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술제를 통해 나왔던 이화여대 김은실 교수(여성학 교수)의 ‘문화연구와 젠더연구’나 동국대 원용진 교수(신문방송학 전공)의 ‘문화연구, 제도권의 안과밖’등의 논문은 문화연구가 새로운 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다.

문화학과 페미니즘과의 만남, 그리고 정치사회와의 접합을 통해 이제 진정한 문화연구를 시작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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