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을 보지 못하는 날이 죽는 날일 것이다.

나는 간판에게 관심이 없지만 간판은 나에게 관심이 지독하다”-「상상」1994년 봄호, ‘간판의 애무, 간판의 유혹, 간판의 범행’중 × × × 서울 거리에 서면 눈돌릴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가득 메운 간판들과 네온사인 불빛에서 누구나 한번쯤 현기증을 느껴번 적이 있지 않았을까? 25일(토)까지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 ‘간판을 보다’는 바로이 이러한 우리의 간판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난립하는 간판의 그래픽, ‘간판이 오늘’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보다 많이, 보다크게’라는 구절은 곧 우리나라 간판의 특징을 비꼰 것이다.

현대 우리 간판 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즉 ‘조화’와 ‘전달력’이 부족하다는 점. 이에대해 전시를 기획한 간판 다지아너 김영배씨는 “간판르 도형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의 눈은 사물을 ‘도형’과 ‘배경’으로 구분해 인식하게 되는데, 이 때 ‘배경’이 ‘도형’과 적절한 대비를 이룰 때 더욱 ‘도형’이 선명히 보인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건물에 적용시켜 생각해 볼 때, 가장 안타까운 사례가 바로 창과 창 사이를 모두 간판으로 메꿔버리는 건물이다.

‘배경’이 될 수 있는 건물 벽과 창 사이에서 그저 커다랗게 나붙는 간판들은 결국 건물 전체와의 크기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도형’으로 우리눈에 쉽게 인식되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건물 전체와의 적절한 대비 없이 그저 ‘크고 우너색이고 많이 붙이는’ 간판이 우리 주변을 덮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간판들이 오히려 눈에 띄기 위해서는 각각이 무조건 튀는것 보다, 전체 거리에 있어 통일성을 갖추는게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프랑스의 상젤리제 거리의 경우, 간판들이 모두 검은색과 흰색, 황금색 이외의 다른색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모든 간판들은 통일성을 지닌 상태에서 각자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그림이나 오브제 등을 이용한 예술간판을 애용하곤 한다.

유기적으로 통일성을 갖춘 각각이 오히려 더욱 눈에 띈다는 베르트하이머의 ‘부분 전체 개념’이 적용된는 부분이다.

비로 이런 점에서 조현신씨는 “무조건 크고 튀는 간판들은 결국 그 어느것도 눈에 띄지 못하게 만든다”며 “정부의 간판색이나 사이즈 제한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때문”이라고 이야기 한다.

단순한 글씨를 적는 제호간판의 ‘외침’보다는 그림, 상징, 간판이도욱 효과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학교 앞 음식점인 ‘보통사람들’의 작고도 조화된 간판은 좋은 간파의 예라고 덧붙인다.

지난 9월 20일 홍대 앞에서 열렸던 ‘시장통 메이크업전’역시 바로 이런 점에서 시작되 시도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빨갛게 ‘정육점’이라고 쓰는 대신 투명한 아크릴 판에 돼지가 새겨져 불빛을 받으면 돼지의 하얀 모습이 더욱 부각되는 간판ㅇ르 걸었던 작가 문병두씨는 “재호만이 가득한 간판, 네온사인으로 그져 번쩍이기만 하는 간판 보다 오히려 글시고 없는 이런 간판이 더 눈에 띌 수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말한다.

무조건 ‘튀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작은 속삭임이 오히려 더 잘들리듯 절규허기 보다 스며드는 간판문화 조성이야 말로 바로 현재의 간판 오욤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