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염색은 하위계층, 회색 염색은 상위계층의 상징이 돼가고 있다’. 이러한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있을까? 교복을 줄여입느냐 늘여입느냐, CD로 음악을 듣느냐 LP로 음악을 듣느냐, 어떤 종류의 커피를 마시느냐, 이런 시시콜콜한 취향이 곧 당신이 속한 계층이 된다면?그리고 이러한 당시느이 취향이 바로 지금 신문이나 드라마, 광고에서 누군가의 지위로 나타나고 있다면? 미디어가 계층을 만든다.

드라마나 광고 등에서 보여주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유치한 대립구도는 그동안 지겨울 만큼 나타났던 것이지만, 미디어는 이제 우리가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하는 사소한 일상과 취향까지 계층화 시키기에 이르렀다.

미디어 비평가 정탁영씨는 “최근의 신문기사나 광고, TV프로그램 등이 대중들의 아주 세세한 취향 문제조차 단정적인 어조로 계급과 연결지어 말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회색 염색이 유학파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노란색류의 염색과 차별화를 선언하고 있다’ 라는 식의 신문기사, ‘부잣집 주인공 여자가 입은 옷은 무슨무슨 풍의 의상’이란 식의 드라마 설정. 이 외 가종 미디어의 ‘단정짓기’가 현실을 사는 우리들의 계급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탁영씨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소소한 취향까지 미디어는 계층화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일까? 우리 학교 김훈순 교수(신문방송학 전공)는 “미디어가 그 기본적 속성상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 때문에 계층구조를 끊임없이 설정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전혀 계급과 상관없을 듯한 세세한 취향에 대한 설정이야말로 어쩌면 이런 계층 설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광고 속 모델이 어떤 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일정한 춤을 추는 것은 보다 현실적인 ‘고급화’를 보여주기 위한 일련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구체화’를 위한 표현 방식이 역으로 어떤 계층을 정의내리는 또다른 ‘언어’라는 사실은 놓쳐서 안될 부분이다.

우리 학교 최샛별 교수(사회학 전공)는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지식인 ’이란 정의가 미디어를 통해 내려질 때‘지식인을 대변하는 것은 곧 시사프로그램’이라는 명제가 역으로 성립한다”라는 점을 예로 들면서 “미디어의 언어로 인해 우리 삶의 모습이 새로운 카스트 제도 속으로 갇히게 될 수 있다 ”고 지적한다.

게다가 ‘취향이 곧 계급’임을 역설했던 삐에르 부르디외의 논리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 이러한 하나의 계급을 보여주는 취행 하나하나의 결합은 곧 상류층이 갖고 있는 ‘자본’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계급의 형성화를 정당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미디어의 취향 구분은 새로운 형태의 ‘모방’유행마저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이미테이션 상품의 등장이라든지 미디어 속의 스타일을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로 끌어오려는 대중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취향이 곧 계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미디어가 보여주는 ‘고급화’형태를 대중이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라는 김훈순 교수의 말대로 ‘누구누구 목거리’혹은 ‘누구누구 가방’등의 사례는 곧 하위계층으로 속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강한 거부감 내지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감이야말로 미디어가 취향의 계층화를 대중에게 보다 종용하고 있다는 사리의 역서적 표현인 것이다.

이에 대해 미디어 비평가 정탁영씨는 자신이 무심코 입은 옷 스타일이나 가방 끈 길이 등으로 인해 어느새 어떤 계급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불안의 ‘섬짓함’이야말로 미디어의 극단적 대비 편집이나 언어에 대해 경계할 이유라고 역설한다.

미디어가 그려놓는 새로운 계급 피라미드를 지속적으로 허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호시 지금 이순간도 자신의 머리색이나 가방 근 길이, 커피의 종류를 정하면서도 TV에 등장하던 누군가를 의식하게 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이미 자신도 이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한구석에 서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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