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적으로 검열 및 부당한 정책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내부적으로는 낡은 고정관념을 발전적으로 폐기하는 싸움을 하는 것이 독립영화”라며 스스로의 작업을‘싸우는 영화’라고 정의하는 독립영화감동 홍형숙씨(시청각교육학·86년 졸). “한국에서, 독립영화로, 그것도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빛이 없는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가기를 선택한 것이죠”라는 말에서 그녀의 싸움이 얼마나 험난한 지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그 싸움은 절대 거대 담론의 허식을 둘러매고 있지 않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서 운파상(한국최고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6mm 67분짜리「본명선언」도 역사, 민족, 차별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이름때문에 눈물 흘리는 소년들로부터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본명선언」의 주제는 일본 오사카 근방의 아마가사키시 아마가사키고교의 재일 교포 학생들이 전교생들이 모이는 특별 총회에서 자신의 일본 이름을 버리고 한국이름을 선언하기까지의 갈등과 고민이다.

운명처럼 주어진‘이름과 정체성’에 대해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본명을 선언한다는 것이 이지메, 즉 일본인들의 배척과 핍박에 무방비로 노출됨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상영되는 동안 대상과 관객은 서로의 삶 속에 뛰어드는 거죠. 그 과저에서 대상과 관객의 변화, 그 속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의 힘입니다”그녀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시 영화 속 인물들이 눈물을 흘릴 때 관객도 함께 눈물 바다가 되고, 「본명선언」의 주인공 마쯔다 순지, 아니 이제는 이준치군이 우리에겐 너무나 진부해 보이는 ‘울밑에 선 봉숭아’를 바이얼린으로 연주할 때 관객들이 모두 가슴 저림을 느꼈던 그 현장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이런 다큐멘터리, 영상의 힘을 발견한 계기는 유행처럼 번진 요즘의 소위‘영화 매니아’들의 행보와는 많이 다르다.

대학 시절 사회에 대해 논리적 측면에서 고민하고 배워나가는 모습에 반해 가입한 동아리‘한소리’. 그곳에서 노래를 통해 세상에 대해 고민했고 자연스럽게‘어떻게 문화적 매체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와중에 우연히 소개로 들어간 곳이 독립영화제작단체인 서울영상집단. 나를 표현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동안 쌓은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질 수 있는 현실적 영향력에 매료돼 이제 노래가 아닌 영화가 그녀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세상의 낮은 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다큐멘터리는 그녀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는데 더욱 적합해 보인다.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시비 걸기. 그 싸움의 과정이 요즘엔 더욱더 힘들어보인다.

최근 「본명선언」을 둘러싼 표절시비로 일어난 모일간지와의 논쟁은 싸움의 상대를 더 뚜렷하게 해주는 듯 하다.

사실 확인 없이 남발된 기사에 대해 서울영상집단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재소해 승소에도 불구하고, 상대 일간지의 반론보도문 게재에 이르도록 전개된 사건을 보면서 제도화된 언론의 권력남용의 폐해를 몸소 체험했다고. ‘무감어수, 감어인­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비추어라’. 그녀의 카메라가 소년과 관객을 이어주는 튼튼한 끈이 돼 오사카 소년에게서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 보듯이, 그녀의 싸움의 적­내부의 관습화된 모순, 일상화된 권력의 횡포­들도 그들으 모습을 사람들에게 비춰볼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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