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금이라 하면 시간이 흐른뒤 어떤 공간에 남은 침전물을 말한다.

다소 거친 활동후 한참을 삭이고 삭여야 남는 그 무엇이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자이기 때문에 겪어야하는 상처를 보듬고 이겨내야만 다른 형태로의 전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형질, 이러한 의미를 살펴보면 아마도 앙금의 정서는 ‘한’의 정서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한’의 정서가 철저하게 타자에 대한 컴플렉스여서 부정적이기도 하고 그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해서 긍정적이기도 하듯이…. 21세기를 바라보는 우리시대 풍경속에 남아있는 앙금은 어떠한 이미지일까? 강운구씨는‘모든 앙금’이란 사진전에서 이러한 시각적 재현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그의 전시회는 주로 농어촌의 현재적 풍경을 주요한 소재로 하여,‘산도, 바다도’,‘버려진 집들1’,‘깨어진 풍경’,‘남아있는 사람들’,‘풍경속의 풍경’,‘쉬운 풍경’등 총 14개의 작은 주제로 구성돼 있다.

작가 강운구씨는 동시대의 위기상황을 보고 있는 듯하다.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속에서 철저하게 타자일 수 밖에 없었던 농어촌의 자연(풍경, 문명과 대립되는 개념)과 사람들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타자들의 현재적 상흔들을 기록하면서도 달리 개선의 대책이 없어 가슴 아파하는 사진적 표현이 작품속에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고민의 깊이만큼 정적이고 무겁고 대안에 대한 물음들의 반복이다.

작가는 자신이 대안 찾기에 실패했기에 대안의 모색을 관객의 몫으로 던지고 있다.

그래서 관객들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 자신이 본 대사을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작가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방법, 즉 대상과의 거리두기와 사실적 재현을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던 것같다.

소설같은 14장의 서사적 구조를 같춘 이번 전시회는 우리시대 자연의 현재적 모습에 대한 애잔한 부름으로 시작한다.

너는 왜 그러한 모습으로 밖에 존재하지 못하느냐고… ‘산도 바다도’로 시작한 이러한 작가의 애상은‘남아있는 사람들’에서는 그러한 풍경속에 살아가는 이들(농민들도 이 시대의 타자이다)의 외롭고 쓸쓸한 분위기로 이어지며‘버려진 집’에서는 페가의 흉흉한 모습속에서 속속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풍겨속에 존재하는 주거 외부환경의‘깨어진 풍경’, 주거 내부환경의 ‘풍경속의 풍경’에서도 버려진 타자들의 절절한 현실, 그들의 좌절에 대한 어찌할 수 없는 가슴 아파함 등이 사진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현재적 존재의 드러냄과 작가의 감정은‘어려운 풍경’에서는 주체(자연의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현재 문명, 혹은 권력 등등의 의미)에 대한 반문을 시작한다.

문명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TV수상기가 여기저기 일상적인 모습으로, 참혹한 잔상으로 자연속에 버려져 드러난다.

이는 문명의 상징으로서의 TV마저도 타자화되어 이미 타자화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비연한 속성에 대한 물음 그리고 타자화된 문명과 함께 할 수 밖에 없기에 더욱 더 참담한 풍경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비애감은 형상의 반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치 이러한 현실이 함담하지 않느냐는 듯이 관객들에게 채근해 되묻는 것처럼… 마지맞긍로 작가는‘쉬운 풍경’으로 대안 찾기에 실패한 자신의 솔직함 모습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물음표가 있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는 풍경 사진으로 자문을 구한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70년대 한국 사진계를 대표하는 드문 사진 작가중의의 한 사람인 강운구씨의 이번 전시회는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타자로서의 자연과 농어민들의 삶을 상징과 은유로 표현한 것이었다.

동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타자들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애정, 끊임없는 사진 작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작가도 작품도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개입되는 다충적 의미 체계의 중층 구조속에 존재한다는 점은 리얼리짐에 입각한 다큐멘터리 사진론으로 한국 사진세우기(?)를 부르짖는 그에게 다소 비판적인 후학들의 논의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

게다가 드러난 작품의 해석과 의미는 관객의 몫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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