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과는 ‘한국 무용과 생명사상’을 주제로 15일(금) 구체육관 202호에서 채희완교수(부산대 무용과)를 초청해 강좌를 개최했다.

생명사상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된 이번 강좌에서는 무용에 내재된 생명사상과 그 실례로서의 몇 가지 전통춤, 그리고 생명사상의 핵심인 신명론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생명사상은 근래 김지하씨에 의해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햇으나 무용과 연계지어 설명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채희완교수는 생명사상에 대해 “우주 삼라만상의 생명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협동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의 생체 유기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거의 농업협동 조직인 두레 조직과 최근 생활문화 운동의 하나로 나타나고 있는 한살림 운동 등을 예로 들며 “개척적 삶과 사회적 삶을 통합적으로 보는 생명사상에서는 개인의 개성 확산이 곧 인간해방, 사회평등 등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생명사상이 지향하는 공동체적 삶에서는 노동과 예술이 합인된다.

공동의 일은 일인 동시에 어울림의 놀이이며 예술인 것이다.

채교수는 “몸을 움직임으로써 생명에 대한 자기확인을 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동으로 자아의 대상화와 대상의 자아화를 동시에 진행시킨다”고 밝힌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해 말을 하며 말만으로 부족할 때 감탄사를, 그것으로도 부녹할 때 노래를, 그리고 마지막 극단적인 표현으로 온 몸을 사용하는 춤을 춘다.

즉 공동체적 삶 안에서 춤은 살아있음의 극단적인 표현이자 교류이다.

그리고 살아 생동하는 춤은 온갖 반생명에 저향해 그것을 척결하고자 한다.

반생명에 저항하는 생명의 춤은 ‘맞이굿춤’‘터벌임춤’‘판씻음’등 죽어가는 생명을 되살리는 신령함과의 만남과 교류로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춤은 팔목중춤 중 ‘첫목춤’과 같은 ‘죽음맞이 춤’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파괴적일 정도로 격렬한 근육춤으로 표현되는 죽음의 몸짓은 이후 선춤과 도약의 춤으로 연결돼 결국 반생명은 이기고 생명으로 나아감을 나타낸다.

채교수는 “‘죽음맞이 춤’이 생명으로 이어지듯 ‘병심춤’이나 ‘살풀이 춤’역시 육체해방과 삶을 옭죄는 살과의 대결과 그 퇴치로 이어진다”며 이외에도 동학의 예배 방식으로 사용돼ㅼㅏ는 검무 ‘검결’, 원효대사의 ‘무애무’. 노동의 힘겨움을 덜기 위한 ‘일춤’,‘강강술래’등을 생명사상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검결’은 사회개혁과 우주개벽을 통한 새로운 삶을 꿈꾸는 표현이며 광대들의 춤을 흉내낸 ‘무애무’는 고답적인 불교를 일상의 삶으로 이끌어내는 춤이다.

또한 ‘일춤’은 일과 놀이의 일치로 일의 생산성과 생명력을 자기화하는 것이며 여인·달밤·물가·원형곡선·회귀 등으로 나타나는 ‘강강술래’는 생명질서의 근원을 뜻한다.

채교수는 이밖에도 ‘화랑도의 춤’‘줄타기 춤’‘승무’등을 언급하며 “우리 전통춤의 여러 갈래를 모두 생명사상으로 포섭해 다루기엔 무리인 측면도 있겠지만 생명기운을 담지 않는 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전통춤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며 모든 춤을 생명사상에 입각해 설명하는 채교수의 입장이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명사상은 어려운 이론을 가진 난해한 학설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생명기운을 담지 않은 춤은 없다는 채교수의 말은 상상한 설득력을 지닌다.

우리 춤 안에 드러나는 생명사상의 핵심은 우주적 생명력과 인간 사이의 교류인 신명론이다.

반 생명에 저항하고 그것을 척결한 후 살아있음을 느낄 때 체험할 수 있는 엑스타시가 곧 신명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은 일면 비과학적인 것으로 들리지만 과학과 이성에 대한 맹신, 그리고 그를 통한 개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강조하는 현대는 지나친 분화로 인해 얼마나 수많은 문제점에 직면해 있는가? 개인의 분화가 아니라 인간과 전 우주적 생명력과의 유기적 합일을 말하여 그 실천을 통해 모든 억압에서의 해방을 추구하는 생명사상. 드러난 질서와 숨겨진 질서를 동시에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신과학의 입장과도 통하는 생명사상은 문화적 인식트로서 뿐만 아니라 ‘네오 휴머니즘’처럼 현대가 가진 수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적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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