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 Buddy」라는 첫 게이, 레즈비언 대중잡지가 창간되었고 벌써 세 권이나 발간됐다.

창간호는 매진됐고, 2호부터는 서울의 대형서점에서도 버젓이 팔리게 되었으며, 심지어 공중파에서도 대단한 일인양 그 소식이 보도됐다.

당연히 대단한 일이고 놀라운 일이다.

물론 난 무조건적으로 이 잡지의 발간을 지지하고, 또 이 잡지가 무조건 성공하길 기대한다.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면 조마간 당도할 줄 믿었던 내방객이 불쑥 나타나버려 조바심치던 기대 하나가 줄어들었다는 유치한 불평 한토막이 있을까. 난 장차 이 잡지가 저 유명한 미국의 「게이 선샤인」이나 「애드보케이트」(이 잡지들은 게이해방운동시대에 출현했던 대표적인 게이잡지이다)같은 잡지처럼 그들이 길어낸 말들이 곧 그 시대의 증후로 의미있게 창조되고 숭배되길 기대한다.

또 이 잡지가 만연한 동성애 혐오와 폭력에 싸우는 무기가 되고 또 동성애 정체성의 안팎을 새로 짜는 지도가 되며, 이성애주의를 연장하고 강화하는 숱한 문화적 규약과 관습에 저항하는 삐뚜룸한 실천의 참호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 그런 빛나는 강령을 「버디」에게 윽박지르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 터다.

「버디」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입술을 바스락거렸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우리-물론 레즈비언, 게이들-는 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능히 짐작하겠지만 이들은 엄청난 고민과 부담과 어려움을 안으며 잡지를 내고 있다.

「버디」의 발행은 레즈비언, 게이 동네만 경하할 일이 아니다.

IMF유령이 발동한 욕망의 기계장치가 굉음을 매며 치닫고 아버지·애국·가족·위기 운운의 보수적인 가부장 이데올로기로 우리 모두의 욕망과 불안을 오이디푸스화하고 있는 문화적 장치들이 횡행하는 요즘, 「버디」는 이미 하나의 해독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잡지는 어깨가 벅찬 이성애자에게도 여간 이로운 일이 아니다.

사회의 위기와 불안을 성의 개종과 정화로 해결하려는 강박이 날로 드세지는 상황에서 「버디」는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하나의 싸움이 된다.

어쩔 수 없이 「버디」는 성에 대한 우리의 모든 체험을 둘러싸려는 이성애주의적 가부장제에 난 구멍이다.

변화를 회귀와 반동·향수로 주어담고 봉인하려는 그 무엇(아버지,남성성, 가족적 가치, 전통 등), 현재의 위기와 한계를 그것의 위기와 쇠퇴로 전격적으로 해석하려는 폭력에, 「버디」는 휘파람을 분다.

가볍게. "나도 있다"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은 이 소중하게 당도한 "물건"을 어떻게 건사하고 가꾸느냐이다.

물론 뜻이 좋으면 되고, 입장이 괜찮으면 된다는 헛소리는 집어쳐야 한다.

그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잡지를 만드는 이들과 독자들이 꼼짝없이 신경쓰고 또 누구보다 열심히 모색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관심은 그런 데 있지 않다.

나는 투박하게 말해 「버디」의 내용과 목적보다 「버디」의 소용과 작동에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어떤 의미도 그 의미를 말하는자들의 투명한 의지대로 그를 수령하는 자들의 의식에 무사히 저항없이 도착하는 법이 없다.

「버디」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아니 「버디」야 말로 그 무엇보다 오인과 착각, 혹은 환상에 기반해서만 자신의 말을 전할 수 있는 사정에 처해있다.

「버디」역시 순수한 독자를 가질 수 없다면, 우리는 「버디」가 어떻게 읽혀지는가의 방향을 통제하는 권력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읽히면서 무엇을 가리키는 가는 결국 그 말이 지금 성의 문화적 인식조건에 얼마나 저항하느냐 혹은 얼마나 타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버디」가 레즈비언, 게이를 비롯한 뭇 성적 소수집단의 적나라한 그 무엇을 증명하고 설명한다고 짐작하진 않을테지만··· 그렇지만 우리의 눈은 혹은 눈자위 둘레의 힘은 그런 의미 쪽으로 쏠리고 기운다.

「버디」는 그래서 지금 또 동성애 정체성의 고백을 쏟아내는 그리고 읽어내는 텍스트가 되었으며, 진실의 매트릭스를 엮는 바늘코가 되기 싶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쁜 일은 아니다.

동성애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바른 이해, 동성애에 대한 바른 정의를 찾기 위해,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그것을 뒤질지도 모를 일이다.

동성애란 진실의 검증장치로서, 동성애에 대한 또다른 통속적인 과학적 지식의 발신자로서 다들 「버디」를 취급하고 또 그렇게 「버디」에게 자신의 글과 말을 늘어놓으라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버디」의 성패는 그에 얼마나 저항하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동성애의 진실이 아니라 동성애라는 허구적인 하지만 분명 현실적인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그에 대한 개입과 작용을 꾀하는 서으이 권력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 그게 있지도 않은 동성애의 본질과 최종적 진실을 찾아내는 일보다 백배 천배 쉽고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버디」를 읽고 난 후 동성애를 잘 알게된 사람, 그 사람은 필경 백치 아니면 사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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