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따다.

칠전동 지점에서 날 따돌리고 장관 국회의원이 전화건 회사만 대출해주니 빽없는 애비도 왕다라고 해!" 요즘 흔한 말로 `왕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따돌림 받는 아이를 일컫는 일종의 은어이다.

그러나 이러한 값싼 단어 하나가 소외당한 개인의 불안 심리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근 한국 사회가 초래한 경제위기는 전에 엾던 `경제인"으로서의 개인의 역할을 상당히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들에게 경쟁적으로 살아남을 것을 충고하고 있다.

연극 「김사장을 흠들지 말란 말이야」는 사회에서 일탈한 개인의 사투를 통해 현재 경제위기가 초래한 개인의 불안심리를 냉정하게 그리고 있다.

김한근은 `정밀개척사"라는 한 중소기업의 사장이다.

꿈나라 계역의 그룹사인 `불꿈사"에 정밀기기 부품을 납품하고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자 그는 임신한 아내를 동지 삼아 이 재벌이 운영하는 호텔 25층에 투숙해서 자살극을 벌인다.

그러나 적진에 용감하게 진입한 감한근이 싸워야 할 상대는 비단 불굼사 사장만이 아니다.

불꿈사 사장의 입김에 회유된 구조대와 경찰은 오히려 김한근이 투숙한 객실에 잠입하기 위해 마취가스를 투입하고 쇠파이프와 전기톱을 들이댄다.

한편 김한근은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25층에서 지상으로 전단을 뿌리기도 하고,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려 하지만 그 누구도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관객 역시 마찬가지다.

이 여눅ㄱ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극 속에서 리얼리티를 부각시킨 한편 대사나 행위의 즉흥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관객은 마치 예기치 못한 시위현장을 접하듯이 무대가 되는 포텔 주변을 서성이는 구경꾼 노륵을 대행하게 된다.

김한근과 그의 아내의 절박한 상황은 이러한 방관자적인 냉소를 배경으로 외롭게 진행되며 이는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견고해진다.

수십만원짜리 브래지어를 팔아서 남편의 부도를 막으려 했던 아내 송미원, 그리고 자기 회사 노조간부들을 앓는 이처럼 여기면서 사원들의 임금을 삭감하여 자신의 부모를 세계일주시킨 김한근 사장은 심리 치료를 위해 호텔 방안으로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정신분석박사에게 사장과 사장 부인이라는 직함을 뺀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들은 `사장"이라는 직한이 가져다주는 `돈"의 생리를 유리하게 이용해온 계층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러한 계층에서 일탈자가 되어 버린 현재의 처지에서 다시 이전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해 이제는 편법을 쓰려하고 있다.

이러한 편법은 그들이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김한근은 호텔에 들어오기 전에 해커를 시켜 불굼사의 비리를 담은 CD를 입수하고 이것을 싸움의 마지막 무기로 사용한다.

이들 부부는 관객에게는 힘없는 약자로서 울분을 토하면서,기업주에게는 비리를 폭로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일삼는 이중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따라서 송미원이 오열하듯 관객에게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장면이나, 김한근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아내를 위로하는 부분에서 관객의 동정을 부러일으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 연극에서 관객이 심정적 이해를 수반할 수 있는 인물은 부재상태다.

김한근과 송미월 부부의 생존 싸움 역시 부당한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온 자들이 행한 부당한 대처방식이기에. 그들 부부는 오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갔지만, 정작 다음날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만기어음이 두 개나 된다는 사실이 멘트를 통해 환기되면서 우리는 1시간 반동안의 구경군 노릇을 마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내일 망하기 위해 오늘 죽음을 연기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관객은 갑작스럼 극의 반전으로 인해 이제가지 냉소로 지켜봐온 개인에게갑작스런 연민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나 김한근이 또다시 내일 싸움을 계속할 때 우리가 구경꾼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제인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것은 단지 중소기업 사장 김한근 뿐만이 아니며, 듣기만 해도 멀미가 나는 경제위기 시대에 우리는 또다른 김한근으로 일상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결국 그가 말한대로 그의 싸움은 그 누구의 적극적인 동조나 심정적인 지지기반 하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그들 부부는 극의 끝나는 순간까지 그가 싸우는 사회로부터, 그리고 그를 둘러싼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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