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결혼한 여자와 결혼 안 한 여자」

결혼한 여자와 결혼 안 한 여자가 각기 받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억압. 우리는 연극을 보지 않더라도,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억압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여성이기 때문이고 우리의 경험이거나 우리의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극 「결혼한 여자와 결혼 안 한 여자」의 연출자는 그렇지 못하다.

결혼이 여성에게 억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남성인 그는 말하지만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혼자 살고 직업을 가진 여자는 행복하고 가정주부는 불행하다’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벗어나려고 했다고 말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연출가에게 여성의 경험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정애야, 너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생각나니? 멋있는 왕자가 공주를 구해서 결혼하잖아. 공주는 얼마나 행복할까?’연극은 결혼 안 한 여자 수인과 결혼한 여자 정애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왕지에 의해 구원을 받고 행복한 사랑을 하게 되는 천편일률적인 동화들. 우리가 어릴 때 수없이 읽었던 그 동화들을 정애와 수인 역시 읽으면서 자랐다.

잘 생기고 멋있는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고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 그리고 달콤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는 것. 그러나 연극은 동화를 비판하고 있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연극은 결혼한 여자, 정애의 회상으로 계속된다.

정애와 수인은 고등학교 동창생이다.

그러나 두 여자 모두 행복하지 못하다.

소극적이고 얌전한, 선을 본 남자와 결혼한 여자 정애의 삶은 남편의 식사와 재떨이를 준비하며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전부이다.

결혼한 여성들의 불행을 반영하는 정애는 극 중에서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안락의자를 떨치고 일아나고 싶어하지만 이미 한 남자의 아니로만 십여년을 살았고 아이들의 엄마인 삼십대의 그녀가 가저응ㄹ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그녀는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안락의자에 주저앉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란 말인가. 연극이 현실에서의 결혼한 여자의 불행을 반영하고 있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애의 삶이 가부장제 속에서 결혼이라는 틀의 제도적 억압을 상징화한 것이기보다는 겨로ㅎㄴ이나 낭만적 사랑에 대한 이데올리기를 포기하지 못한 한 여자의 불행이나 푸념정도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을 낳지못하는 여성의 고민이나 남편의 불륜으로 겪는 고민이 대사 한 줄이나 한 장면으로 그칠 뿐 극 전체에서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극의 한계는 결혼 안 한 여자 수인의 설정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결혼 안 한 여자 수인에게 흔히 겪게 되는 사회의 편견어닐 시선 따위는 없다.

직장에서도 여성이기에 당하는 차별은 없다.

그녀는 능력있는 카피라이터로 인정받았고 별안간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껴서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런 그녀의 불행은 오직 유부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녀는 결혼하고 싶지만 유부남을 사랑하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정애의 안락의자를 만져보며 아쉬워한다.

결국 수인에게는 단지유부남과의 사랑만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수인을 ‘결혼 안 한 여자’라고 지칭하여 수인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수인은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일 뿐인 것으로 설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결혼과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애와 수인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져 오는 억압의 구조를 드러내기 보다는 한 남자와의 구체적인 관계속에서, 특히 수인의 경우 ‘이루지 못한’사랑에 의해서 불행한 것으로 나타날 뿐이다.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그녀들은, 그리고 우리들은 결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부일처제의 틀에서 여성을 통제하고 여성을 가부장제에 편입시키는 제도, 결혼, 그리고 그 결혼에 대해 어릴 때부터 우리가 가지게 되는 수많은 환상들. 그 속에서 결혼한 여자는 언제나 권력을 가진 남편에 의해 억압받을 것이고 결혼 안 한 여자는 가부장제에 편입하여 남성들의 권력 유지를 돕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자 구실 못하는 여자가 돼버린 채 소외당하게 될 것이다.

결혼한 여자 정애가 억압받을 수밖에 없는 제도 자체에 문제 제기하고, 결혼 안 한 여자 수인이 사회에서 받게 되는 온갖 편견어린 시선들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직장에서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한 정애와 수인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환상을 여전히 포기하지 못했으며, 제도와 가족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는 어설픈 주인공들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관객은 연극이 사작할 때 들었던 정애와 수인의 목소리를 끝날 무렵 다시 듣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설정은 억압의 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기보다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람 들렸다.

‘정야야, 너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생각나니? 멋있는 왕자가 공주를 구해서 결혼하잖아. 공주는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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