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석이 채 못될 것 같은 소극장안에 7시가 넘어서자 블라디머(디디)와 에스트라곤(고고)이 나타났다.

나즈막한 언덕이 된 극장안에는 화요일 밤임에도 객석의 절반 이상을 채운 관객이 디디와 고고에 의해 "아름다운 경치"가 되기도 "해골"이 되기도 한다.

나무 한그루가 있는 한 언덕에 저녁때쯤이면 고도를 기다리는 두부랑자가 나타난다.

그들이 언제부터 고도를 기다렸는지 알수가 없지만 디디의 "어제는···내일은···"이라는 대사는 그 기다림이 일상이었음을 비춘다.

고도가 누군지는 모른다.

두사람에게 잠자리와 먹을것, 내지는 일자리를 약속한 근처의 목장주일지도 모른다.

이 두사람은 해가 기울어갈 무렵이면 고도가 오기로 약속한 이 언덕에 와서 지루한 시간을 탓하며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는 다음날 올 것이라는 전갈이 오고, 두사람은 절망하지만 다음날 다시 그 곳에 나타난다.

이 언덕에서는 몇 개의 시간축이 교차한다.

고도라는 희망과 수동적인 기다림, 희망의 지연에 대한 절망, 이 세가지의 반복이 극을 이루는 기본 테두리며 순환적인 시간구도이다.

그 시간 위에서 대부분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고도를 기다린다"는 목적도 잊고 있는-디디가 상기시키지 않는한-고고는 내일과 단절된 현재성으로 순간순간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디디는 희망, 기다림, 절망을 반복하면서 어제와 오늘을 총괄하는 "삶"이라는 직선적인 시간구도가 된다.

이 교차점들 위에서 냉정한 관조자이던 나는 "고도"라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기다리기만 하는 현재에 대해 따분해하기도, 오지 않는 내일에 대해 가슴 한구석에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두사람은 예수와 함께 매달렸던 두 강도에 대한 말장난을 하며 구원을 바라듯이 나무에 매달려 죽음을 시험해 보려 하기도 한다.

이 따분한 시간을 가르며 포조와 럭키가 등장한다.

친구관계인 고고와 디디에 반해 이 두사람은 주종관계이다.

포조는 "춤을 춰봐", "생각해봐"라고 럭키에게 명령한다.

포조의 명령으로 생각을 시작하는 럭키의 사고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고찰로 시작해서 혼란으로 끝이 난다.

럭키의 생각은 고통과 지옥, 시간의 연속성, 인간과 노동, 유물적인 인간과 유의적 인간, 현상의 실체인 에네르기에 대한 편린일 뿐이다.

포조와 럭키는 떠나고 저녁이 되자 고도 대신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는 내일 올 것"이라는 전갈을 전한다.

디디는 자신보다 고도씨와 가까운 소년에게 질문을 던진다.

무슨 일을 하는지, 고도씨가 잘 대해주는지, 때리지는 않는지, 누구는 때리는지 등으로 시작된 질문은 "너는 불행하지 않느냐?"로 치닫는다.

소년의 대답은 "모르겠습니다"이다.

"불행한지 어떤지 모르겠단 말이야?"로 되묻던 디디는 "너도 나와 같은 신세로구나···"라고 말을 맺는다.

고도에게 전할 전갈을 묻는 소년에게 디디는 자신들을 만난 것이 사실이니 그것을 전해달라고 한다.

소년은 떠나고 디디와 고고는 내일 다시 오자며 언덕을 내려간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중학교 일학년때 처음 접한 연극이었다.

난해함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 눈으로 두통을 잊어가며 보았던 이 극은 부조리라는 단어만을 남기고 뇌리에서 사라졌었다.

9월말에 프랑스에서 내한한 마기마랭 무용단의 「메이비」-「고도···」에 영향을 받은-라는 작품을 보기 전까지는···10명의 진흙인간이 등장해 본연적인 본능들을 표현하는 이 작품은 난해함 대신 유쾌함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다시 접하게 된 이 「고도···」는 배우의 대사 한마디한마디가 군더더기없는 수학기호처럼 다가와 해이한 나의 사고를 난타했다.

고도가 올 것이라고 약속한 그 다음날은 계속된다.

나무에는 꽃이 피었고, 발을 죄던 고고의 구두는 누군가에 의해 편안한 신발이 되기도 했지만 고도는 다음날 올 것이라는 소년의 전갈은 여전하다.

다시 마주친 포조는 장님이, 럭키는 벙어리가 되어있다.

하지만 또 어느날이 되면 "운명이 바뀌어졌던들 내가 그 놈의 신을 신고 그 놈이 내 신을 신기도 했을거야"라는 포조의 대사처럼 어찌될지 모른다.

여기서 변하지 않는 것은 흐르는 시간과 오지 않는 "내일"일 뿐이니··· 디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은 언제나 반복되지 않은 새로운 처음이다.

망각하는 고고에게, 포조와 럭키에게···고도의 전갈을 가지고 오는 소년조차 어제는 자신이 이 곳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이 혼란이라는 한 점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도 초월해버린다.

모든것에도 불구하고 고도를 기다리는한 고도와 디디에게는 고도는 계속되는 희망이고, 주변이 망각으로 일그러지더라도 디디가 기억하는한 사실은 사실이며, 포조가 볼 수 없더라도 가시적인 세계는 여전히 그자리에 있고, 럭키의 사고 또한 현상을 어우르는 인간의 통찰이므로··· 그 혼란의 순간이 가시고 그 언덕에 밤이 찾아오고 두 사람은 언덕을 내려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그 몸짓에서 확신있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부조리를 휘감고 지나가는 시간과 그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변해가는 그 언덕, 그속에서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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