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예선, 대 일본전에서 막판 역전극으로 불붙은 월드컵 열기는 축구팬들의 문제가 아님은 물론 더이상 남자들의 문제도 아닌 것이 되었다.

대 일본전이 끝난날 9시 뉴스에서 월드컵 기사가 전체의 50%이상을 차지했으며 ‘축구 봤니?’라는 확인 절차를 삭제한 채 바로 축구 얘기를 시작해도 상대에게 실례가 되지 않았다.

실로 엄청난 열기이며 전 국민적 기쁨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길거리가 어수선하고 텅비고 대형 전광판 앞에 몰린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동질감과 친애를 느끼며 가슴설레는 유대를 나눈다.

온 동네는 “와”하는 함성으로, TV를 보지 않고 일하던 사람들에게도 ‘한 고울’이 들어갔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TV로 달려가 슬로우 모션으로 되풀이되는 화면으로그 한 골을 확인할 수 잇게 도와준다.

애인과 친구들은 서로 전화로 기쁨을 나누고 ‘뭔가 된다’는 설레임은 모든 사람들을 어린애처럼 들뜨게, 심지어 ‘광분’하게 만든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라들마저도 축구의 열광팬인양 온 촉수를 곤두세우게 하는 이 월드컵, 축구, 90분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 대한 이상열기는 단순히 3S정책 운운하기엔 되려 민망할 지경이며 그래서 차라리 우리는 너무도 진진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이번 월드컵의 열기는 어쩌면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와는 무관한 열기로 보인다.

본선 진출에 대한 염원, 그것을 넘어서는 자족적이고 내면적인 어떤 열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장 운동다운 운동으로 축구를 꼽는다고 한다.

야구나 농구 등 다른 종목에 비해 적용되는 규칙이 가장 적으며 90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게다가 인간이 하는 운동 중 유일하게 발로 하는 경기인 축구는 그래서인지 많은 골이 터지지도 않는다.

팀웍과 개인기가 조화되어 90분중에 겨우 한 골을 터뜨릴 수 있을까 말까한 축구는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처럼 드라마틱 하며 그래서 우리의 인생에 비유될 수 만치격한 감동을 준다.

어떤 화려한 장비 없이 공 하나와 튼튼한 다리만을 요구하는 축구는 우리에게 희망에 가까운 감동을 주기에 손색없는 경기일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의 바깥으로 나와, 우리는 너무 되는 일이 없는, 정석, 기본이 희화화되고 본말이 전도된, 술수와 권모가 삶의 지혜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어리러운 사회에 살고 잇다.

한 번도 정권이 바뀐 적이 없는, 정치인들의 잘잘못이 평가받지 않는 변화없는 사회, 그리고 최근의 격심한 경제난, 취업대란, 그리고 성폭력, 입시지옥, 세대갈등, 높은 인구밀도와 교통란, 물가...뭐 하나 산다는 일이 합리적인 구석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구석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잇다.

그날 그날의 운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잘한 티이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반칙을 하면 경고를 받으며 많은 경고를 받은 선수는 물러나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와 기쁨이 다르는 스포츠는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희망이자 몰입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면된다’는 말이 무색한, 뭔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가질일이 부재한 우리 일상의 무력감을 축구는 통쾌하게 날려준 것이다.

‘공이 그물을 출렁이며 들어가고 그러면 우리는 이긴다’물론 스포츠 경기의 관람 뒤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소감이 ‘한민족임이 자랑스럽다’는 둥 ‘한국만세’로 뛰어나오는 관성적인 감탄사가 아닐런지.(한일전의 경우는 이런 관성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이 된다) 아련한 시선으로 경기의 종료를 지켜보다 돌아서며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축구 열기에 휩싸여 느끼는 것은 어떤 씁쓸함이 아닐까. 브라운관 내, 초록색의 풀밭위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 다시 돌아갈 일상에 대한 암울함. 신문과 TV 를 장식하는 우울하고도 대책없는 뉴스들에 대한 끝도 없는 갈증. 이번 월드컵 열기의 한 복판을 지나며 생각해보건데 우리는과연 축구로부터 합리적인 게임의 운영과 협업에 기반한 철저한 개인주의, 쓰러진 선수를 일으켜 세우는 신사도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더 이상 스포츠가 민족주의에 한 끝은 댄 집단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상식적이지 않은, 되려 상식이 거대한 이상처럼 느껴지는 사회에 사는 우리가 이 열기 속에 한가지 남길 것이 있다면 합리와 규칙 존중이 부재한 이 한국과 한민족에 대한 차라리 분노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