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몇 해 전에 출간된 노란색 겉표지의 「행복한 책읽기」라는 제목의 책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은 고 김현의 유고 일기로 타인의 글을 읽고 평하는 것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기라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책이다.

아마도 일기란 자신만의 은밀한 내면을 독백으로 담는 것이라는 통념을 뒤흔듯 탓에 이 책이 독특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같다.

그러나 이책의 진짜 묘미는 다른 것에 있다.

책장을 넘겨가면서 직가의 삶과 책읽기가 둘이 아닌 하나로 용해돼 있는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삶과 괴리되지 않고 더 나아가 삶과 하나로 어우러진 책읽기는 실존적 고통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은 이 책과 동일한 저자가 80년대의 암울한 사회 현실을 겪으면서 「책읽기의 괴로움」라는 제목을 단, 또 한권의 책을 펴내고 있는 것을 통해서 설득력을 얻는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는 책읽기와 살아가기가 화해롭게 어우러져 있지 못한 시대에 살고 있다’거나 ‘책읽리라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에서 처럼 세계를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연유하는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분명 이글은 한 작가에 대한 소개나 비평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저자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두권의 핵인 「행복한 책읽기」와 「책읽기의 괴로움」이 제목으로도 충분히 책읽기의 두얼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책읽기의 괴로움」이 제목으로도 충분히 책읽기의 두 얼굴을 상징적으로 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책읽기의 괴로움」이 책과 벗이 되기까지, 책읽기가 습관화돼고 체질화 되기까지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행복한 책읽기」는 무감동한 습관이나 과제, 혹은 심지어 억압으로까지 다가오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환기시켜준다.

즉 책읽기가 하나의 기쁨이고 유희일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우리에게 ‘호모 루덴스’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일어한 즐김은 아무런 준비없이 누구에게나 즉각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느정도의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향유하기까지 누구나 적어도 한번 쯤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나의 경우에 책을 지나치게 신성시한 나머지 이 거대한 진리에 어떻게 손을 대야 할 것인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어려움을 겪곤 한다.

그리고 책읽기를 통해 살아있는 정신과의 대화를 나누려 하기보다 이미 고정되어 있는 내용들을 손상시키지 않고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믿음에 몰두한 것이 이러한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스스로 책앞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서 있기를 자처한 셈이다.

책읽기에 대한 이러한 수동적 자세는 책의 의미를 가로질러 기호들의 여백에서 독자만을 위해 마련된 놀이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빗장을 내부로부터 채우게 만든다.

그러나 이 놀이의 공간을 자기 나름의 특과 편견까지도 동방한 오독을 허용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우리의 마음이 다소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독에 대해 반드기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봇 필요는 없다.

책읽기는 해석의 문제에 다름아니기 때문에 다야야한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다.

만약 책읽기에서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권리를 가진 단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한다고 고집할 의사가 없다면,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오독은 또다른 창조적 실천이 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가을에 책읽기의 괴로움을 넘어 행복한 책읽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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