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눈앞에 둔 서울의 봄은 연일 세상의 온갖 추잡함을 한데 모은 듯한 소식들로 시끄럽기만 하다.

개혁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출발했던 우리의 ‘문민정부’는 한때 국민들에게 살아볼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잇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처음의 요란했던 구호와는 달리 점차 그 기운이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하더니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신문1면을 장식했고 급기야 한보사태와김현철 부정 의혹사건등으로 90년대식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혼탁함으로 가슴 답답한 계절에 작가 임옥상이 소리높여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들과 함께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예술은 특정한 시대와 함께 호흡하면서 그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쓰다듬고 치유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는데 우리의 경우 80년대의 ‘민중미술’이 바로 그 전형을 보여준다.

하겠다.

비록 그 전개과정과 성과에 대한 논란은 많앗지만 분명 민중미술은 적극적으로 당시의 사회적 모순을 형상으로 드러내어 세상에 알리고 보다 많은 일반대중들과 소통하고자 노력함으로써 현실을 변혁해 나가는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햇다고 할 수 잇다.

임옥상은 그 민중미술운동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잇는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부터 시작해 민중미술 진영의 핵심에서 올곧은 현실해석을 바탕으로 매체를 다루는 탁월한 솜씨와 새로움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통해 민중미술이 변혁이라는 막중한 임무의 수행 뿐만 아니라 미술 자체로서 지니는 예술성을 한차원 높이는데 기여한 작가로 평가받아왔다.

이번 그의 일곱번째 개인전은 전시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작가적 특성을 어긋남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역사’를 커다란 주제로 설정하고 크게 몇 개의 방으로 구분해 설치한 작품들은 작가의 말을 따르자면 ‘글이 가지는 기승전결처럼 나름대로 개념을 가지고 정리해 보여주고자 의도됐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화제의 대상이 됐던 바닥에 물을 가득 채운 어두운 방은 커텐을 열고 철조망을 뭉쳐놓은 징검다리에 발을 내딛는 순간 거대한 생명체의 뱃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속내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현실로부터 유리된 듯한 방안에는 대형인물사진과 역사적 인물들의 부조초상, 작가의 알몸 자화상, 쓰레기에 덮힌 여운형의 얼굴상이 설치돼 바닥의 물과 이따금 들려오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관객들로 하여금 시각 ·청각·촉각을 동시에 동원한 공감각적 체험을 유도해 ‘역사’라는 주제의 의미를 극명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또다른 방들에는 컴퓨터 게임을 이용해 정치인의 속성을 풍자한 작품, 환등기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자신의 알몸으로 받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작업, 추잡한 정치현실을 꼬집은 만화같은 그림, 천민자본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을 담은 작품, 무표정한 젊은이의 상반신 모습을 여러가지 화려한 색채로 물들인 부조작품 등 매체와 기법을 넘나들며 저마다 비판과 야유의 목청을 드높이고 있었다.

임옥상의 이번 개인전에서도 역시 그동안 그가 보여왔던 스펙타클한 작품구성, 대중과의 원활한 소통 지향, 바닥에 뿌리내린 현실인식 등 대형작가로서 갖추고 있는 역량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지만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것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변화된 정치·사회·문화적 지형 안에서 미술이 현실을 비판하고 변혁시키는 힘으로서 변함없이 재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실천전략과 형식 역시 탄력적으로 바뀌어야한다는 당연한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리얼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임옥상이 풀어나가야 할 숙명적 과제임과 동시에 건강한 미술문화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통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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