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학영화축제를 살펴본다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난감한 질문들, 그리고 더이상 아방가르드가 되기 힘들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들, 형체를 잃고 사그라져 가는 듯한 자신을 추스리려는 몸부림들, 그러면서도 기대값을 높이는 당돌한 재기발랄함들. 제1회 대학영화축제는 이러한 복수형들로 시작돼 마침표없는 문장으로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상영된 영화들과 세미나장에서의 열띤 토론에서 덩치가 커지고 골이 깊어진 그것들은 결국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이 돼 장기원기념관 주변을 맴돌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5일동안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영화는 지금 어떤 좌표에 서 있는가? 그리고 제1회 대학영화축제에 초대받은 동영상의 손님들은 대학영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었는가? 90년대 대학영화는 장점과 단점 모두를 떠안은 채 출발했다.

80년대에는 내용의 층위에서 일차적인 판단의 기준과 공감대가 형성됐고 따라서 영화의 형식이나 완성도와 같은 복잡한 고민은 뒤로 넘길 수 있었다.

그것이 없다고 해도 공통의 사상과 선전의 필요성은 보는 이들과 만드는 이들을 함께 껴안을 수 있게 했고‘적들의 사회’가 눈에 확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는 이 모든 것들의 힘이 미약해졌다.

일차적으로 피부에 느껴지는 것은 대학영화의 기술적, 재정적 지반, 그리고 노하우가 폭증하는 영상문화와 관련 담론들의 위세에 비해, 그리고 그것들에 고무된 대중들이 느끼는‘영화에 대한 기대값’에 비해 미약하다는 자괴감이었다.

하지만 그 자괴감 뒤에는 일정한 희망이 있다.

접근 가능성 높아진 영상문화의 다양한 자원들은 절망감이자 도전과 비판의 출바럼이며 배움의 자리이기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의 생경함에서 벗어난 이들은 80년대의 삼민주의(?)를 넘어서 다양한 것들을 말걸기의 성찬에 올릴 수 있게 됐다.

이 시점에서 우리들의 동료들은 어떤 생각을 어떤 형식적 틀에 담아내고 있을까? 상영작들의 개인 내부의 차원으로 소재의 지평을 확대했으며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여러 외지를 통해 라뤄졌던 바다.

그들 중 주목할 만한 최대공약수는 매체 테크놀로지와 영화 자체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다.

‘어두운 방’,‘Tech No Man’,‘버스 안에서’,‘?_!’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모두 현대의 자아가 매체라는 타자에 의해 축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특히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는 영화의 매커니즘을 비현실 공간으로 나타냄으로써 현실의 이면에 놓은 재현과정의 문제를 재치있게 풀어나간‘어두운 방’이나 영화와 다큐멘타리, 현실과 비현실 각자가 지닌 단단한 벽을 숨가쁜 속도로 깨부수지만 영화와 현실 사이에 놓은 엄연한 괴리감을 놓치지 않는 영화에 대한 영화‘?_! ’은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단편영화, 단편소설 일반이‘문제제기’의 성격이 강한 건 인정하지만) 테크놀로지에 직면한 자아의 개입방식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더 심도있는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현대의 기계문화는 난데없는 에덴동산으로의 퇴행(‘Tech No Man’)을 꿈꾼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비현실공간으로의 진입, 즉 새로운‘영화 내의 현재’를 만듦으로써 현재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원칙에 지나치게 물든 한국영화의 공백을 채워나갈 바람직한 상상력이 아닐까? 앞서 말한‘어두운 방’이외에도‘주식회사 문학과 지성’,‘ET를 기다리며’등이 이러한 작품이었는데 비록VHS작품이서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세기말의 자본주의 보여주는‘다양함 속의 극단적 정체성’에 대해 심도있게 발언하고 있다.

전자는 이익단체로 탈바꿈한‘문학과 지성’이, 후자는 콜라와 담배, 영화가 금지된 세계가 세기말 대중문화의 무언의 폭력을 말해준다, 사실주의에 얽매일 극영화로서는 실어증에 걸릴만한 주제들을 다뤄내는 상상력이 문제 자체의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으로 키워낼 장점들인 것이다.

또한 탄탄한 단편소설같은 시나리오에 기반한‘그림자’,‘이질감정’등의 극영화도 제작됐는데 이들은 모두 소외계층이나 가부장제의 근본적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들어 주목받고 있는 리얼리즘의 새로운 지형도가 대학영화에 있어서도 존속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기분좋은 작품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의 편린들은 남는다.

MTV와 큰가위(?), 또는 생경한 전형화나 싸구려 고급문화 취향에 매몰돼‘해석의 한계’를 보이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는 점과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더 많은 대학인들의 호응이 아쉬웠다는 점이 가장 큰 응어리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이디엄들’에 자기검열을 하는 것은 아닐까? 또는 ‘동시대의식’이라는 것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DIY(Do It Yourself)정신과 자유로운 비판의식만으로도 격려와 질타 어떤 것이든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 아닐까? 대학영화에서 일반문화와 같은 대중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대학영화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것을 집안잔치로 끝내는 데 결사반대하는 비슷한 공감대의 대학인 대중의 참여다.

대학영화가 먹고 살아야 하는 소중한 식량은 만드는 이들, 그리고 동아리들에도 있지만 많은 몫은 그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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