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영화진흥법을 재논의한다

지난 17일(월) 새로운 영화진흥법(영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영화매체에 의한 표현의 자유를 확인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의 권위는 여지없이 실추됐다.

국가의 최고실정규범인 헌법의 최종적 해석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는 작년 10월4일‘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사전심의’가 우리 헌법상 인정되지 않는 언론·출판에 대한 검열로 명백히 위헌임을 천명한 바 있다.

바로 헌재의 위헌결정은 과거 군사정권하에서 행해진 대중문화 각 영역에 대한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통제정책에 조종을 울린 것으로 우리 대중문화 역사의 일대 전환의 계기가 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인 영화계와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문체부)는 헌재결정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해 영화의 표현의 자유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조속히 추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적 영화인들(구체적으로는 한국영화인협회와 전국극장주협회, 일부 공륜심의위원들)은 여당의 영진법안에 힘을 보태줌으로써 신한국당의 개정안이 국민적 합의를 도출했다는 명분을 세우도록 했고 문체부는 각계의 여론을 수렴한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미온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 결과 헌재결정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독립영화인들이 야당과 공동으로 추진해 온 영진법안은 폐기됐고 오히려 위헌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등급결과과정과 현행보다 범위가 축소된 등급심의 면제를 규정함으로써 헌재결정의 의미를 최소화시키고 그 근본취지를 몰각시킨 법률이 통과된 것이다.

개정 영진법은 헌재의 사전심의제를 관람가능한 연령만을 구분하는 등급심의제로 바뀌도 등급외전용관은 불허하고 공연윤리위원회를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로 개편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개정 영진법을 살펴보면 ‘등급외 전용관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가 있다고 인정되는 영화에 대해 6개월간의 상영보류를 결정할 수 있다(법제12조 5항)’고 하는 것은 그 영화의 상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제작자가 자진삭제를 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제작을 완료해 시의적절하게 상영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영화에 대해 6개월동안 상영정지를 한다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인해 이에 대한 구제절차가 인정된다고 하더라고 그 구제절차의 시도자체를 무의미하게 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검열의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형식에 구애됨이 없는 이 ‘선별에 의한 사전 억제’라는 검열의 개념에 해당되는 모든 제도에 대해 위헌이라고 한 이전의 헌재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된다.

6개월간의 상영보류결정과 함께 개정법의 또하나의 개악요소는 등급심의면제를 받는 영화의 범위를 극히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은 시행령이 인정하는 범위의 소형·단편영화, 영화제 상영용 영화에 대해서는 심의면제를 규정하고 있으나 개정법에서는 등급심의의 면제를 받는 영화에 대해 전적으로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영화제의 활성화라는 영진법의 기본취지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등급결정기구인 공진협은 공륜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데 문체부장관이 가지고 있던 심의위원의 추진권이 문체부 산하단체인 대한민국예술원장에게로 이관됨으로써 그간 영화계가 계속 주장해 온 ‘민간자율기구’에 의한 등급제도는 개정법에서도 실행되지 못하게 되었다.

문체부와 여당은 새로 시행될 영화등급제도가 ‘국가기관에 의한 표현행위의 사전억제’라는 검열의 요소들을 모두 해소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기존의 검열제도와 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법리적으로 다시 한번 위헌 논쟁이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와 더불어 영상영역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영화인들의 실천운동 또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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