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휴웃길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현수막이 두 개나 결려 있었다.

지금은 그 중의 하나만 남아 있지만, 여전히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어느 동문회의 새내기 환영 현수막이 바로 그것이다.

동문회 알림을 주로 간단한 포스터로만 대하던 우리에게 대기업 정도만이 내걸 수 있는 커다란 현수막을 보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현수막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하고 지나가곤 했다.

‘저건 뭐니? 쟤네 동문회는 돈도 많고 잘 굴러가나 보다’라든가 혹은 ‘그냥 장난인가 보지 뭐’등등. 그러나 아무 생각없이 쉽게 지나치다가도 누구나 한번쯤은 왠지 모를 불편함을을 느끼는데 이는 그 현수막의 거대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위압적인 문구가 주는 당당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그 현수막을 내건 동문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여성들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이화안에서 남성들의 문화와 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무의식적인 사고와 행동들에 대해 문제제기하려 한다.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동문회는 국가비상시에 우선한다’,‘선배는 카리스마적 권위를 갖는다’-를 찬찬히 들여다 보자. 이것은 분명 남성들이 주류인 동문회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이다.

한국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연줄이 얼마나 큰 배경이 되는지 익히 아는 남자들은 일찍부터 동문회를 통해 탄탄한 결속력을 다져간다.

그들의 동문회는 상호부조나 공동의 지향점을 갖기보다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생존전략이기 때문에 집단이기주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

또한 남성중심의 사회문화는 필연적으로 위계를 중시하고 나아가서는 폭력적이고 여성을 비하하는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것이 지니는 폐단은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될 것이ㅏㄷ. 신고식때 통과의례로 행해지는 얼차레나 사발식, 혹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노래 등은 그들의 배타성과 집단성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결국은 정치팜이나, 대기업, 신문사, 방송사들의 인맥을 하나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들의 동문회는 과연 위에서 열거한 지배적인 남성문화로 이뤄져 있는가? 물론 아니다.

그래도 왜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동문회(여성들의 동문회는 물론 그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오랫만에 만나는 동창으로 인해 반가움과 정겨움이 있는 장이다.

)를 우리의 언어로 얘기하지 못하는 걸까? 남성의 문화에 기반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다보면 우리는 점점 더 그들의 가치관과 삶을 내면화하면서 항상 주변인의 위치로 머무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던 우리의 경험을 찾아 당당하게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드러내자. 우리가 가꾸어 가는 여성들의 공동체에는 우리들이 갖는 배타적인 집단주의 대신에 국가비상시를 슬기롭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해 나갈 지혜가 있고,모두가 우러러보는 카리스마적 영웅보다는 서로서로를 보살피고 격려하는 진정한 자매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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