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한국모더니즘의 전개- 근대의 초극 1970~1990’

우리에게 ‘현대’는 서구에서처럼 근대적 이성에 대한 비판의 시대가 아닌 윌 교유의 이성확립의 시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현대성에 대한 요구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서구적 의식개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전시회가 있다.

이번 달에 새롭게 개관한 금호미술관의 개관기념 ‘한국모더니즘의 전개- 근대의 초극:1970~90’(9일(토) ~12월 27일)전이다.

이 전시회는 이제까지 지나치게 서구화만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더니즘이 순수 추상회화 중심의 화단에 기득권을 부여하면서 회화의 본질에 집착하고 사회와 연계되지 않는 양상을 보여왔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모더니즘의 본질적인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도외시 되어왔던 민중미술과 설치작업에 대한 미술계의 현실을 이 전시회를 통해 재정립시켜보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작가 선정의과정에서는 유영국, 박서보, 김창렬, 이우환 등의 작가들이 정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과감히 배제되었고 대신 사회에 대해 반기를 표명하는 작가군이 한국적 모더니즘의 계승자고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금호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롭고 실험적인 정신을 통하여 아방가르드적인 면을 제시한다는 모더니즘 초기의 진정한 의미로 되돌아 가서 우리미술의 상황에 맞는 모더니즘의 의미를 반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에 한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활동을 통해서가 아닌 특정작품에 촛점을 맞춰 그 작품에 내제하는 미적 논리를 시대의 변화에 연결시켜보려했음은 가히 독창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 잇겠다.

그러나 획기적이고 비판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한국모더니즘의 전개’전이지만 이는 상당히 주관적 기획의도와 더불어 기획자체가 한국미술의 모더니즘을 말하기에는 관람객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만큼 무모한 욕심을 낸것이라고 생각된다.

사실상 지금 진행되는 제1부 ‘모더니티, 사회, 매체’의 전시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접하는 것은 전시장 내의 모호한 구분 뿐 아니라 전시된 작품들로 인하여 대변되는 장르 자체의 독특한 모더니티와 공통적인 모더니즘의 속성의 부재가 결정적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금호갤러리가 미술관으로 승격하여 미술문화의 활기를 불러일으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뒤로하고, ‘전시공간의 확대만이 전시개념을 확대시킨다’는 묘한 등식을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윌는 작품들의 선정작업과 그 나열-작품의 제작연도나 재료도 명시돼 있지 않고 그 작품나열 자체만으로도 힘겨움을 보여주고 잇는-로서만 한국미술의 새로운 모더니즘을 만족하는데 그쳐야 한단 말인가? 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짚어줄 필요가 잇다.

모더니즘이 이미 하나의 형식주의, 제도화된 흐름을 지칭하는 용어로 정착된 이마당에 모더니즘의 근본 정신을 운운하며 또 다시 그에 연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지금의 다양한 움직임을 포괄하는 다원주의적 시각을 서구의 포스트모던 개념의 무비판적 수용이라고 말하는 것은 모더니즘이라는 제도권에서 다시 한번 모든것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견해로 들린다.

7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치면서 민중미술이나. 설치가 모더니즘 발전사에서 소외되왔던 것이 반드시 모더니즘안에서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그 한이 풀릴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전시회는 비판정신과 의욕이 넘친 나머지 대중을 향한 미술관의 보편성을 결여하고 있는 전시로 비춰진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에게 다시금 확신시켜주는 것은 한국미술 내에서의 모더니즘 규정은 쉬운 테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모더니즘을 추상 중심으로 풀어온 지금까지의 입장이나, ‘현대성, 대중성’을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미학적 대중주의를 우리 모더니즘의 방향으로 풀어보려는 입장은 역사적 기득권층의 계승여부에 따라 정통성을 인정받느냐 못 받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중요한 기준적 요소가 미술사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다행스런 일인데, 그것은 작품에 대한 대중의 시각에 의한 평가이다.

따라서 조형성에 기반한 순수회화가 상대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모더니즘의 움직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며 민중미술이 모더니티를 지니는 것으로 보편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언제들지 모더니즘으로 영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속의 시간앞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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