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밀과 거짓말」

‘비밀과 거짓말’(마이크 리 감독)을 보고 난 후, 깐느에서 상받은 영화는 다시 보지 말아야지 했던 몇년 전 다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했던 주인공이 바로 마이크리 감독의‘네이키드’였음도 아울러 생각났다.

나는 아무래도 마이크리 감독과는 감수성의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일까? 버려진 흑인 딸이 백인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는 것은 한 편의 영화일 수 있다.

백인 어머니가 15살에 낳은 딸을 버렸다는 것도 영화일 수 있고 그 어머니가 자신이 낳은 딸이 흑인이란걸 까맣게 몰랐다는 것도 좀 말은 안되지만 영화일 수 있다.

어린 동생을 공장에 다니면서 기껏 키워놓았더니 사진관을 하며 잘 사는 그 녀석은 자신을 찾지도 않고 그의 처는 아이도 갖지 않은 채 사치에 몰두하며 이기적으로 군다.

게다가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환경 미화원을 하는 딸 역시 별로 살갑지 않다.

우울증에 걸린, 한 번도 행복해보지 못한 여자 주인공은 인생의 신산스러움이란 신산스러움은 모두 갖춘 늘 우는 목소리를 내는, 애정에 목마른, 외롭고 돈 없는, 비참한 말년이다.

‘비밀과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거짓과 비밀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우리에게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 보일 것을 권유한다.

흑인 딸과 백인 어머니 간의 쉬운 화해의 모습을 줄곧 보여주던 영화는 끝에 가서 가족 파티에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비밀(비밀은 완곡한 형태의 거짓말이기 마련이다)을 털어놓고 서로 이해함으로써 포옹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끝맸는다.

주인공은 ‘이게 사는 거야’라고 계속 읊조린다.

이들은 모두 비밀과 거짓에 기반한, 상처로 매개된 관계들이다.

그리고 영화란 항상 갈등을 보여주고 갈등을 풀어가고 다시 갈등을 생성하는 것이기에‘비밀과 거짓말’은 영락없는 영화 그 자체의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요소는 요소일 뿐이다.

요는 그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 그리고 갈등 그 자체일 뿐인 우리 인생을 내밀하게 바라보게 하는 통찰력이며 그 때서야 영화는 한편의 오락인 동시에 예술이 될 수 있다.

‘비밀과 거짓말’은 상처입은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 그들이 소리지르고 울부짖는 것을 보여주다 그들이 화해하는 순간으로 모든 것을 완료한다.

그러나 문제는 화해의 순간이 아니라 화해한 후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방식화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규명하는데 달려있지 않을까? 상처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의 상처를 클로즈업한 카메라에 담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 처럼 그저 자신의 입장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으로 족한, 단순한 것이 아니다.

상처를 드러낸다는 것이 그렇듯 쉬운 것이라면 밤마다 벌어지는 술자리에서의 고해성사와 주먹이 오고가는 치열한 싸움 뒤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외롭고 힘든 것일까? 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상처도 화해도 이해도 모든 것은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과정이기 때문이다.

‘네이키드’를 봤을 때 처럼 이번 역시 나는 감독이 인생은 정말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것을, 서로 의도한,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들의 연속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술자리의 고해성사 뒤에도 여전히 신산스러운 우리의 삶을 제대로 직시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면, 그 짧은 말들로 서로를 이해하고 따스한 햇볕아래 차를 마시는 엔딩은 얼마나 유치하고도 멜로적이라는 것이란 말인가? ‘비밀과 거짓말’을 고백하고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면 행복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다 아는 것을 다시 한 번 보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나는 비밀과 거짓말이 빚어내는 우리 삶의 이중주를 절묘하게 성찰한 대작을 기대하고 갔지만(그도 그럴 것이‘비밀과 거짓말’을 둘러싼 무성한 논의들을 생각해보라) 정작 보고 온 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느 지친 여자가 섣부른 위로와 고백을 통해 안정을 찾는 신파일 뿐이었다.

다시 한 번 결심하건데(이제는 좀 더 면밀하게) 깐느가 아니라 마이크 리 감독의 그 잘난 척을 내가 다시 보러간다면… 어쨌건 마이크 리의 영화를 내가 볼 일은 별로 없을 것이 확실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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