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갑자기 80년대 전경의 학내 침탈 상황으로 전환되고 전경에게 잡혀가는 진주를 본 영웅은 2층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그를 구출한다 ’-sbs드라마 ‘남자대탐험’중 ‘70년대 유신철폐운동 시위 중 재민을 찾기 위해 시위현자을 헤메는 진경은...’-sbs드라마 ‘8월의 신부’중 ‘모래시계’이후 몇몇 단막 드라마와 얼마전 종영된 SBS드라마 ‘남자대탐험’, 그 후속작으로 방영 중인 ‘8월의 신부’까지 TV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투쟁의 현장’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것을 그다지 색다르게 보지 않는다.

그리고 드라마의 주제인 흥미진진한 사랑이야기 속에 양념처럼 곁들여진 90년대 이전의 진보운동들을 ‘주인공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시대상’정도로 생각하고는 가끔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격렬한 시위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언제부턴지 드라마의 소재이상을 넘어서진 못하지만 나름대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이유가 어쩌면 ‘진지한 과거의 성찰’로 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잇다.

운동현장에 대한 무비판적 소재주의와 시대를 정직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관점은 분명히 구분되야 한다.

하지만 그 구분에 앞서 짚어 줄 것은 ‘운동권에 대한 신성화 이미지’를 깨뜨리는 데 TV가 영향을 미쳤으며 그 파급력은 가장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드라마가 ‘민주화투쟁’을 단순한 소재로 다룰지라도 과거 ‘어찌 진지한 성찰 없이 감히 ‘변혁운동’을 다루는 가?’와 같은 비난의 여지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인정된다.

이제 안방 드라마에서 ‘변혁’과 ‘진보’모기업의 광고와 같이 가볍게 소화해도 ‘나’는 아무런 부담을 갖지 않는다.

그리하여 ‘투쟁의 현장’은 대중의 머리에 참신한 소재로서 자리잡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것이든 상품이 될 수 있기에 특히 TV라는 매체에서 그러한 이미지가 ‘신성화’가 아닌 ‘친근한 소재’로 자리잡는다는 과정은 별 무리없이 진행된 것이리라. 하지만 일견 드라마가 ‘과거’민주화 투쟁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단순히 다루기만 함으로써 그것을 ‘친근하게’희석시킨다는 그들 드라마가 90년대 아직도 실제하는 투쟁의 션장은 절대로 다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엿보인다.

여전히 사회 모순에 못이겨 쓰러지는 자 있으며 아직도 갇힌 자 가득한 세상인 90년대임에도 언제가 90년대와 그 이전은 마치 *양 보게 덧씌우는 암묵적 동의 가면을 뒤집어 보자. ‘드라마는 언제나 현실과 괴리가 있기 마련이야’이정도 변명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90년대 마의 무심한 ‘투쟁의 현장’다를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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