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초의 국제영화제인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3일(금)개막됐다.

개막식은 외국초청 인사들과 국내의 영화계 인사들, 시민등 5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대 성대하게 개최됐다.

총 7개 부문으로 나뉘어 상영되는 참가작들은 31개국 1백70여 작품들로 실험성이 강한 예술영화와 흥행영화가 골고루 섞여있고 아시아·유럽·미국 등 지역 안배에도 신경써 취향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비록 단 이틀밖에 관람하지 않았고 아직 1회인 만큼 그 평가를 섣불리 내리기 어렵지만 ‘죽을 때까지 싸우기’식 영화에 밀려 소외돌수 밖에 없었던 영화들을 소개함으로써 문화 궁핍현상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 관객의 욕구를 조금이나마 충족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번 국제영화제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문은 다름아닌 최근 ‘저패니메이션’이라 불리우며 전세계의 다양한 연령층의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 애니매이션이었다.

그동안 한국에게 문화 수출저지를 받던 일본 애니매이션이 부산에서 공식상영됐다.

일본문화에 그동안 배타적·부정적 태도를 취하던 한국에서 세계영화계 흐름의 열린물결을 받아들여 일본 영화를 상영한 것은 긍정적 시도라 생각된다.

이번에 상영된 작품은 야외 상영된 ‘기억’을 비롯해 ‘공각기동대’·‘침묵의 함대’등 세편이었다.

결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최근 ‘저패니메이션’을 주도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발표한 이 작품들은 현대사회의 허점을 간파하고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인류에게 닥칠지 모르는 가상미래를 우울하게 나타낸다.

특히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상영작은 단영 오톰 가츠히로 감독의 ‘기억’. 오토모 감독은 88년 ‘아키라’로 유럽과 미국 전역을 휩쓸며 엄청난 수의 ‘저패니메이션 숭배자’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더욱 유명하다.

이번 그의 최신작 ‘기억’은 산만하고 구성이 미약했다고 비난받은 ‘아키라’를 개선, 섬세하고 힘이 넘치는 화면 연출과 탄탄한 줄거리 연결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아냈다.

7개 부문 중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영화제에 참가한 ‘기억’은 세개의 중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작품이다.

첫번째 이야기 ‘환상의 장미’는 2092년 우주를 배경으로 1백여년전에 죽었던 미모의 오페라 여가수가 애인과의 추억을 컴퓨터로 재생시켜 가상현실로 만든후, 그 안에 서 ‘기억’으로 살아 움직임으로써 우주선들을 구조 신호음으로 유인하여 파멸로 이끈다는 가슴 서늘한 이야기이다.

이 중편에서는 ‘기억’속에서 움직이는 사랑이 얼마만큼 맹목적이며 무서운 것인가를 시사하고 잇다.

두번째 이야기 ‘악취탄’은 제약회사의 한 연구원이 정부의 지실 만든 샘플 알약을 감기약으로 오인, 복용한 후에 살인가스를 온몸에서 발산하는 인간살인병기가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일본 열도를 멸망으로 이끌어 가지만 일본당국을 비롯한 미국조차도 손을 못쓰는 상황에서 관객들은 군국주의와 과학, 그리고 썩은 정치가 빚어내는 ‘세계의 자멸 가능성’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게된다.

세번째 이야기는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대포의 거리 ’적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항상 전시체제에서 몸을 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얼굴표정과 ‘포대를 지휘하는 장군’만을 꿈꾸는 한 소년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감독이 무엇을 시사하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대포로 중무장한 도시의 풍경은 독일 일본등의 군국주의 ·파시즘을 연상시키며 카메라의 무거운 움직임은 공포감을 조성하며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기억’이 단순한 만화 이상인 것은 사실감을 자아내는 그림솜씨와 그 박동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내배치는 사회에 관한 성찰·비판·풍자로써 ‘기억’은 ‘기억’속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영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는 이 ‘저패니메이션’을 단순히 ‘기억’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소위 ‘문화상품’이라 하며 일본의 긍정적인 이미지 그리고 세계정복을 꿈꾸는 그드르이 숨겨진 야망을 ‘애니메이션’,‘영화’등 영상매체에 교묘히 감추려 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오토모 감독의 사회비판 속에 담긴 또하나의 의도를 단순히 떠넘겨짚어서만은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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