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서 습관처럼 옆 사람의 신문을 힐끗거렸다.

그런데 잠시후 나의 시선은 힐끗거림으로 끝나지 못하고 정정되고 말았다.

그것은 대학내 흡연구역설치에 관한 기사때문이었는데 하필 기사대상이 된 학교가 E여대였기 때문이다.

여대라는 것,아니 여성이라는 잡단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뭔가 부자유하다는 느낌.이것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성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놓여짐으로써 얻어낸 산물일까. 8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소위 한총련 사태라 불리는 일련의 상황이 화려한 언론 플레이 속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얼마전가지 신문지상을 장식(?)하던 것은 다름아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그다지 유쾌할 수 없는 기사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현실을 개탄했고 나 역시 분노로써 그 사건들을 접했었다.

특히 나를 더욱 분개하게 했던 것은 그 사건들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였다.

언론의 관심사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닌 피해자으 지극히 사적이고, 사건 발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가정환경이나 학업성적,학교 생활 태도였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를 오히려 원인 쩨공자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힘없는 여성의 무력함과 설움을 느끼던 나에게 한 달이 지난 지금 들려오는 것은 한총련 사태에 관련하여 연행된 여학우들에 대학 성폭력 사실과 여성들의 과다노출에 대해 법적 제재를 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이다.

바로 사회으 전반적인 체계가 남성들의 손에 쥐어져 있는 현실에서 여성으로서 잘 살아가는 방법은‘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고 이 땅의 남성들은 말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나 자신의 태도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그건 문제야’라고 분개하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잊어빌곤 한다.

혹은 ‘그건 내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니까’하고 먼 발치서 관망만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대동제때 고대생들의 폭력도,TV만 켜면 보이는 광고속의 상품화된 여성들도, 여중생의 출산사건도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냉소주의 혹은 여성으로서의 자신감 상실도 남성 지배문화속에서 나에게 은연중 심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그것이 노하우라고 말하면서 남성의 착실한 보조자가 되기를 혹은 남성지배문화에 편입되기를 꿈꾸는 것이다.

결국 내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처한 현실을 어떠한 파장이나 비하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도 권력을 가진 자가 먼저 그것을 내주려는 법은 없다는 것에서부터 .정말 당당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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