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단대지「녹원」

“은정이도 세미나 보고서 내고.자, 이번 커리 읽은 소감부터 말해 볼까요?” “철학적 의심이 회의를 위한 회의로 끝나면 안되겠따고 생각했어요” 아직은 쌀쌀한 개강 첫주, 그러나 학관 5층 녹원방은 세미나 열기가 후끈하다.

‘인문인의 상징 기림이 마음껏 뛰노는 푸른 공간’을 의미하는「녹원」은 인문대의 단대지이다.

“이화에는「이화」교지가 있듯이,인문대에는「녹원」이 단대의 위상에 맞는 언론기관의 역할을 하죠.인문인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하며,다양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준다고 할까요”라며 김현성양(영문·3)은 녹원을 소개한다.

작년 녹원지 39호를 보면 이러한 녹원의 의도가 잘 배어나오는데, 인문대의‘알찬강의찾기’나 인문인의 소설·평론 등을 실어낸 ‘기린글터’가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은 녹원이 문예지나 학술지의 성격으로 인식외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에게는 녹원이 책을 만드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뿐만이 아닌 현재 대학인의 위치를 고민하게끔 하는 실타래를 던져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보기 흉하게 이리저리 엉켜서 실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있습니다.

...이화 내에는 그리고 사회내에는 이런 풀어서 다시 감지 않고 내버려둔 실타래 같은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녹원은 과감히 그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려 합니다.

해야 하지만 쉽게 하지 않는 일들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 -녹원 39호 여는글 중- “내 손으로 책을 만든다는 기쁨도 있지만 대학과 사회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고 제도의 고정된 틀 속에서 소외되어 잘 보이지 않는 측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박혜영양(중문·2)은 소속감이 없던 1학년초부터 녹원의 일원으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해갔던 과정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이야기한다.

소수정예를 자처하는 네명의 녹원인들은 벌써부터 바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이들은 방학 내내 철학·여성·역사 등의 폭넓은 토론을 해왔단다.

학기 중에는 기획을 공부하기 위해 시립도서관들을 찾아다니고 매주 편집회의를 한다.

1년의 기획이 곧 자신의 고민이 되며,따라서 지난 39호를 만들 때는 동아리를 중심으로 대학문화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는데. “처음56년에 녹원이 출발할 때는 문리대의 단대지였어요.그리고 현재 학부제로 인문대의 네개과가 사회과학대로 들어가게 되는데,저희는 인문·사회과학 공동의 단대지로 녹원이 확대되는 바람을 가지고 있죠.4월에 있을 수습위원 선발때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변진석양(영문·3)은 책을 펴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고도 덧붙인다.

“자신의 글을 ‘기린문단’에 투고하는 학생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아쉽고, 재정이 어려워서 지명도 높은 필자에게 청탁하기가 어렵기도 해요”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고생했는데도 3천명을 웃도는 인문인 수에 훨씬 못미치는 2천여부밖에 찍을 수 없었을 때는 무척 안타까웠다고. 각 단대 마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시기마다의 정보적인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 있어서 효과적이고 자치적인 매체가 단대지와 단대신문이다.

그렇다면 이화내 사진의 이야기를 직접 담을 수 있는 지면으로 인문대의 단대지「녹원」이나,사대의 신문「벗님네와」처럼 각 단대 고유의 언론 활성화를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올 11월에 발간될 40호를 위해 3월부터 편집회의를 준비하는 녹원인,이들의 모습에서 인문인 전체의 얼굴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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