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영화평론가 토니레인즈의 호평으로 일약, "문제작"이 된 "내일로 흐르는 강" 단지 세계적인 평론가의 호평 한마디로 이 영화가 세인의 관심거리가 된 것은 아닐태고, 저예산의 실험적 독립영화라는 제작방식 또한 몇몇 영화매니아를 제외하고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되기가 어렵다 "동성애 영화"라는 이슈가 장안의 화제가 됐을 것이고 사람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어지게 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크라잉 게임" "패왕별희" "결혼피로연" "필라델피아" "아이다호"등 세계적인 감독들이 만들어 낸 걸작들 속에 이제는 한국의 자본으로 한국의 감독이 한국의 동성애를 한국의 가족사를 그려냈다는 것은 충분히 주목받을 일이고 환영할만 하며, 특히 강요된 이성애 사회속에서 고립되고 소외된 동성애자들의 문화적 부재사오항에서 "내일로 흐르는 강"은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아주 반갑고 고마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한 켠에 있느 ㄴ우려-지금 우리 사회는 성, 특히 동성애에 대해 진지하게 탐문하고 토론하고 있는가, 그것없이 한 감독에 의해 이야기될 성과 동성애에 관한 인식과 그 영향력은 지대할 것이기 때무이다.

-가 걱정되지만, 야시만만한 신예 박재호감독의 도전에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영화는 1부는 아버지, 2부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로 구성되었다.

6.25이후 주인공의 어머니는 빨갱이로 몰린 남편을 잃고 생계를 위해 전 남편의 소생인 명수형과 명희누나를 데리고 아버지 뻘 되는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재가한다.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독재자 아버지, 공부보다는 제임스 딘고 트위스트 여자친구가 더 좋은 명수형, 사촌 정우형과 비밀스런 사랑에 빠진 명희누나, 아버지의 기대를 받고 집안의 전통을 이어갈 유일한 희망인 주인공 정민. 아버지의 독재적인 환경속에 가족 모두는 숨이 막히고 그 가족의 일탈로 몰락이 예고된다.

독재자 박정희의 죽음에 이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에 새 기운과 희망이 싹트지만 이제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가족의 개념은 사라진다.

그러나 월남전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돌아온 명수형, 정우형과의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결국 사생아를 낳아 혼자 키우는 명희누나, 학생운동과 영화에 푹 빠져 지내는 정민은 희망이 희망으로 되지 못하고 해체와 좌절 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대학생이 된 조카 미란(명희누나의 딸)은 87년 6월 항쟁의 언덕에서 열렬히 싸우는 투사가 되어 있고, 어머니마저 힘겨운 삶을 마감하고 정민은 정말 혼자로 남아 있는데... 서른살의 노총각 정민. 어느날 우연히 찾아간 게이바에서 승걸을 만나고 그에게 사랑과 포근함ㅇ르 느끼며 새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그도 쉽지가 않다.

승걸의 "가족"에 이입되지 못하면서 고독과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1남 1녀를 둔 가정을 꿈꾸는 정민! 한국현대사와 가족사를 접목시킨 이야기는 소설, 연극, 영화에서도 이에 익숙해진 소재지만, 이 영화의 차별성은 결국 "가족사"를 보는 관점이다.

가족이라는 그 속에 내재해 있는 독재성과 보수성, 오랜 세월동안 이어져 내려온 관습과 그 관습에 익숙해져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풍자한 1부의 이야기는 감독의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게 한다.

이리도 "가족"을 비관적으로 그려된 영화가 있었던가? 그러니 비관이 비판이 되기를 바라고 대안의 가치가 그려지길 바랬던 2부 -가족은 갑자기 1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주인공 정민의 동성애 관계를 그려내면서 코메디로 전락해 버렸다.

우선 주인공 정민을 제외한 영화 속의 게이들 전부가 지나치게 과장되고 희화화되있다.

이것은 감독이 어설프게 "동성애자 세계"를 엿본 결과이다.

또 하나 동성애 관계안에서도 역시 "가족"이 품을 그리워하고 소망하는 주인공 정민을 통해 사랑의 결론을 확실히 결혼과 가족이라는 이시대의 가치관에 철저히 동조하고 있다.

이 영화의 흐름속에 그 누가 새로운 가족의 유형으로 동성애를 고려나 할까? 오히려 이성애와 동성애의 적대적인 이분법의 사고로 "동성애"에 대한 반감과 공포심을 극대화시켰고, 동성애와 동성애자는 역시나 변종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마지막 종기모의 칠순잔치에 승걸을 데리고 나타난 정민이 자신들을부부라고 소개한 후 한바탕 "노란 셔츠의 사나이"를 불러제끼고 쇼크로 쓰러지는 종기모의 모습으로 이 영환느 끝을 맺는다.

그 황량한 라스트씬만큼이나 감독이 제시한 가족, 결혼, 그리고 이 시대의 성과 사랑에 대한 관점은 어설프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 영화가 저예산의 독립영화, 신예감독의 빛나는 실험정신, 소품과 장치, 음악을 통한 훌륭한 이미지 드러내기에도 불구하고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제 막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일어나고 제 목소리를 낼 때쯤 만난 "내일로 흐르는 강"은 동성애자에게 패배와 좌절의 일격을 가한 멋진 영화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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