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 시대상·작가성향 따라 다각화

미술운동에서는 그동안의 현실주의 미술을 크게 「비판적 현실주의」와 「변혁적 현실주의」(이와 유사한 다른 많은 개념들이 혼용된다)로 구분해 왔다.

일견 의심의 여지없이 보일 수 있으나 이와 같은 구분은 매우 세부적인 적용을 거치지 않을 경우 오해를 낳기 쉽다.

비판적이나 현실주의가 아닌 경우도 많으며 변혁적이지만 현실주의가 아닐수도 있고, 집회용 걸개그림이지만 비판적이지 않을수도 있으며 전시장에 걸릴작품이지만 변혁적일 수 있다.

낭만주의적 방법이 변혁적 기능을 훌륭히 수행할 수도 있으며 작품만으로는 현실주의의 판별이 곤란하더라도 그것의 실현 맥락에 따라 현실주의로 살아있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이 여러변수들의 특별한 종합을 보여주는 작품, 작가들만을 (그중에서도 일부를)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겠다.

정제된 긴장담은 오윤의 목판화 오윤의 목판화들을 보자. 무조건적인 인내로 다져졌으며 영양부족과 강도높은 노동의 악순환 속에 남은, 단단하게 속이 찬 뼈대를 암시하는 걸고 가는 근육과 표정의 움직임을 정지와 폭발 사이의 완전한 기장(따라서 완전한 평형)으로 몰아넣어,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한 구석에도 잡념어린 기회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윤은 70년대에 지식인으로 형성된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민중의 원천을 농민으로 보았으며, 과학적 세계관은 민중종교적인 역학적 세계상에 밀려있었다는 의미에서 「아직」비판적이지만 그는 현대에서 「단지」불완전할 뿐 현실의 어떤 측면 (이를테면 기층민중의 삶의 끈질기고 응축된 힘)을 매우 진실하고 창조적 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질적인 의미에서 뛰어난 현실주의자였다.

그가 아직 비판적인 현질주의자였다는 점이 이후 목판화를 주요 무기로 선택한 많은 이들을 비속화로 떨어뜨리는 데에 기여했다.

그의 형식은 지적인 상징화를 핵심으로 하는데 이것은 일면 지식인적인 관년성으로 떨어지기 쉽다.

그에게서 독특하게 통일된 민중적 힘과 정갈한 형식은 그의 「역학」으로만 가능하다고 하면, 전혀 다른 의미에서 민중의 힘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들 조차 그의 형식을 차용하려고 할 때 도안화, 도식화의 위험을 안게 되었던 것은 필연이 아닐까.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김봉준, 홍성담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김봉준은 정제된 긴장대신 수수하게 풀어진 기층민중을 보았다.

이는 오윤의 다른 작품속에 이미 존재해 왔던 것이지만, 그것이 오윤의 핵심은 아니었던 반면, 김봉준은 「칼춤」(오윤의 판화)이 아닌 어깨춤을 핵심으로 끌어 안았다.

그것은 시한 폭탄같은 오윤의 정서보다 일상적 투쟁의 전개가 절실해진 90년대의 이후의 상황에 더욱 적절한 현실주의적 소통전략이라고 할수도 있다.

민정기, 문화적 착종현상 드러내 오윤과 민정기는 동시대 현실주의가 얼마나 서로 다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흥미있는 예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들에게는 매우 유사한 흔적도 발견된다.

이를테면 오윤의 「마아케팅」과 같은 작품이나 민정기의 여러가지 키치(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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