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주의 현단계를 살펴본다 <4>
현실주의 현단계를 살펴본다 <4>
  • 이대학보
  • 승인 199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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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정서 수용·유통구조 확보가 과제
현단계 남한 영화에서의 현실주의를 검토하는 일은 몇가지 선행작업을 필요로 한다.

일차적으로 현실주의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남한에서 영화가 처한 객관적 상황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다.

영화매체의 자본집약성과 대중적 영향력으로 인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의 높은 종속성은 현실주의로의 더딘 행보의 한 원인이다.

일제하부터 시작하는 영화의 역사가 그리 짧은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카프 영화운동의 단절과 정권의 파행적인 영화정책이 남한 영화의 자생적 발전을 지속적으로 억압해왔다.

민족영화자본의 형성을 차단하기 위해 제작이 아닌 흥행부문의 자본 비중이 높았던 일제하의 기형적인 유통구조는 청산되지 않은 채 해방후에도 계속 영화산업구조를 결정짓는다.

제작자본과 흥행자본의 분리와 후자에 의해 주도되는 영화산업구조, 영세한 영화자본은 영화제작자들이 방화제작을 기피하거나 한편의 영화로 단판승부를 하려는 투기 경향을 낳았다.

여기에 가세한, 특정 영화사에 특혜적성격을 지니는 영화정책, 방화제작을 더욱 기피하게 하는 영화법, 영화를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검열은 가뜩이나 열악한 조건의 남한 영화를 더욱 더 빈곤하게 한다.

이러한 남한 영화산업 구조는 영화가 타 예술쟝르와 비교해볼때, 현실주의의 성취도에 있어 양적, 질적으로 뒤떨어지는 상황을 낳게 된 것이다.

영화의 상업성과 종합예술성 둘째로 영화에서 현실주의를 논의하기 위해서 짚어보아야 할 사항은 영화 매체 자체의 특수성이다.

이는 모든 예술 쟝르에 공히 적용되는 바인데, 그도 그럴것이 모든 예술은 자신의 고유한 예술언어를 갖고있으며, 그것으로 현실주의의 성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것의 산업적 성격이다.

산업으로서 영화가 의미하는 바는 영화산업구조 내에서 철저히 상품으로 기능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오락성과 상업성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영화의 발전과 기술의 발전간의 긴밀한 결합이다.

크게는 발성영화, 칼라, 와이드 스크린, 핸드 헬드카메라 등 촬영, 편집, 조명상의 수많은 영화기술이 영화에 부여한 표현의 자유와 현실주의적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의 산업성과 더불어 영화를 특징짓는 것이 영화의 집단적 성격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는 시각매체이지만 문학, 연극, 음악, 미술등 거의 모든 예술쟝르의 요소가 복합되어 있다.

이러한 종합예술적 성격은 각 영역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한편의 영화는 감독을 위시하여 각각의 전문가들의 집단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매체의 특수성 때문에 영화에서 현실주의 모색은 단지 창작방법에서 뿐만 아니라 창작조직운영과 배급체계에 대한 고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예술로서의 영화와 그 가능성, 곧 교육·선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쉽지않다.

영화에서의 현실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80년대의 영화운동의 출발점도 바로 제작에 있어서의 소집단성, 수공업성의 탈피였다.

하지만 결과는 제작비, 전문성, 대중적 기반, 제작방식에서의 수공업성, 영화예술에 대한 이해의 문제에서 추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작품 실천상의 성과를 보면 잘 드러난다.

주요 작품이라 할 수 있는「파랑새」,「순영이의 사랑이야기」(서울영화집단),「깡순이」(슈어프로덕츠),「전국노동자대회」(민족영화연구소),「흩어지면 죽는다」(들풀),「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전사」(장산곶매)등을 보면 대다수가 다큐멘터리로서 작품적 가치라기 보다는 영화사적 가치를 갖는 것들이다.

이들 영화에서「현장성」을 기치로 내걸었던 80년대 영화운동의 현주소와 함께 극영화제작의 빈곤한 물적토대, 동시에 극영화 즉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일면적 이해를 읽을 수 있다.

80년대 경험의 축적과 반성위에서 90년대 영화운동은 보다 팽창한 물적 토대와 영상매체에 친숙한 대중의 정서와 감각을 수용해야하며 이를 가능하게하는 대규모 제작, 배급체계를 갖추고 작품으로서의 자기 기능을 수행해야할 과제를 안고있다.

이런 의미에서 16mm장편극영화「파업전야」는 80년대의 고민과 90년대 영화운동의 문제의식과 방향을 충실하게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형영화와 충무로영화의 새전기 영화운동진영의 이러한 발전의 추동력인 벽혁운동의 성장은 충무로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것은 관객의 변화하는 기호를 읽어내는 자본의 이윤추구와 맞물려있는 것이긴 하지만 대중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할때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변화는 예술의 역사가 일반적으로 보여주듯이, 우선은 소재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지금까지는 금기시 되었던 노동자계급이나 파업, 운동권, 반미, 빨치산투쟁, 광주항쟁등으로 소재가 크게 확대되었다.

아직도 개방되지 않은 소재의 영역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그것보다는「어떻게 그 소재를 다루는가」라는 주제의식에 관련된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권을 다룬 영화 가운데 가장 악의에 찬 시선과 왜곡으로 가득찬「미친 사랑의 노래」를 보면, 운동권 학생과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도 치유될 수 없는 월남전의 상처라는 메시지 뿐만 아니라, 진압자 입장에서 촬영된 시위장면과 거기에 사용된 공포분위기를 자아내는 음악 등은 가히 반동적이라 할만하다.

이 영화와는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진「그들도 우리처럼」역시 형상의 본질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탄광촌에 들어온 수배당하고 있는 운동권인 주인공은 주위의 광부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하얀 얼굴을 하고(이는 연출 상의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운동권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각과 관련이 있다) 공허한 이론싸움이 아니라「바로 여기」에서 그들과 같이 하는 삶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관객에게 주인공의 고민의 실체에 대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극의 줄거리 내에서 주인공의 행위의 무게가 수반되지 않음으로써, 이제는 우리시대에서 의미를 잃은 나로드니끼의 독백을 듣는 것같다.

두꺼운 안경에 생머리를 한 역시 운동권인 후배여학생의 모습 또한 생경하다.

부담스러운 진지함과 음모적임, 내용없는 단호함을 운동권의 전형적 표징으로 사용하는 작품의 근저에는 운동권의 구체적인 고민과 활기를 추상화, 무력화시키는 소시민적 입장이 깔려있다.

빨치산을 스크린에 담은「남부군」은 40만이라는 관객동원을 기록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계속되는 빨치산들의 전투들이 기계적으로 나열되는 가운데, 싸움의 의미를 잃어버린 주인공처럼 납득되지 않는 전투속에서 영화관랍의 의미는 실종된다.

자각적·역사적 내용과 사상적 깊이, 밀히자면 역사에 대한 심오한 자기 평가가 결여되었을 때 역사는 추상화된다.

작품에서 그것은 사실들의 기계적 나열이나 꼼꼼한 세부묘사에 그치는 자연주의적 방법이나, 구체적 계기가 아니라 비약을 통해 해결하려는 낭만주의적 방법을 필연적으로 택할 수밖에 없다.

「남부군」은 지루하다.

그것은 세 시간이라는 상영시간의 양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 대상을 감독이 장악하지 못함으로써 주인공들의 고난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해석의 실패는 당연히 그 현재성의 부재를 초래한다.

특히 대상으로 하는 역사가 최근의 것일수록 더할 것이다.

이를 더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부활의 노래」이다.

진보적 영화로는 처음으로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 이 영화의 참담한 흥행실패는 예술은 작품성으로 승부를 해샤 한다는 명제를 확인해 주고 있다.

주인공들의 고민하고 투쟁하는 모습 자체만으로 그 구체적 내용까지 모두 말했다는 식으로 역사는 추상화된다.

현실주의는 한 인물이 무엇을 하느냐는 물론이고 또한 그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하느냐에 의한 성격화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주인공이 무엇을 고민하며 어떻게 결단하게 되느냐이다.

이 영화의 이러한 결함은 광주항쟁의 형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것의 비장감과 감동마저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내용에 의해 뒷받침되지 못하는 형식적 장치들이 그 고유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을 도청사수장면과 영혼결혼식 장면에 쓰인 몽따쥬의 지루함을 통해 알 수 있다.

90년대 영화 당파성 틀어줘야 지금까지 제도권 영화이든, 비제도권 영화이든 공통의 조건으로 작용하는 바와 그것이 현실주의 성취를 제약하는 바를 살펴보았다.

90년대 영화는 현실의 제반문제를 당파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 그러한 영화제작과 배급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것을 과제로 하며 그것은 현실주의로의 길이다.

김혜원 연세대 대학원 독문과 석사과정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