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성작 「사랑의 조건」의 김진숙 차희주(국어국문학과·3)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지배하는 성적 거래의 만남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주체적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 모든 생각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돕고 사랑하는, 고통과 시련을 함께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요 연인이요 동지인 관계…」 김광주와 김진숙이 만난 때는 계엄령이 내린 80년 5월. 그들의 만남이 그러했듯이 그들의 사랑 또한 절박하고 건조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고문의 상처를 보듬으며, 피멍든 온몸을 핥으며, 처절한 삶의 현장 속에서 단단하고 올곧게 커가고 있었다.

김광주가 말하듯 그들은 친구요 연인이요 동지로서 역사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안재성의 두번째 장편소설 『사랑의 조건』은 나­김광주의 시점에서 씌여진 살아감과 사랑함이 하나를 이루며 역사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연애는 운동의 걸림돌」이라고 공공연히 인식해오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젖어드는 감동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사랑과 운동은 별개일 수 없음을, 사랑은 한 남자인 나와 한 여인인 나의 감정적 공감대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로지 둘만의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은 말해주고 있다.

김진숙. 그녀는 김광주를 처음, 핏빛 80년에 만났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운명을 바꿔놓은 사람은 김광주였다.

운동을 시작하고, 구속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가고, 그리고 다시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활동가로서 제자리를 굳힐 때까지 함께 할 수 없었으나, 늘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녀를 도운 사람이 김광주였던 것이다.

그녀의 삶에서 보여지는 지난한 과정들이 그녀를 더욱 강하고 억센 여자로 만들었기에 그녀의 가슴은 더더욱 순수하고 소박한 채로 남겨질 수 있었고, 한 남자의 혁명을 향해 불타는 열정을 믿었고, 그보다 더 강하게 사회 속의 나로, 현실 속의 나로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여자로서의 김진숙은 김광주를 만나기 전 아이를 가진 적이 있는 과거를 가진 여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다.

이제까지의 소설 속에서 형상화된 여성의 모습은 남편을 통한 일방적인 주입과정에 의해 점차 의식이 변해가는 타에 의한 각성자이었고 투쟁의 삶보다 남편과 자식에 대한 걱정, 염려에 더 가슴 졸이는 여성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김진숙은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약점을 알고 괴로워하며 자신을 비난하는 남편을 보며 『너는 후퇴했어(중략) 여성의 순결, 귀여운 아이와 안락한 생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관념이니? 나는 여자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 짧은 삶에 역사를 바치고 싶을 뿐이야』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강하기만한 그녀에게서 나는 눈물을 본다.

개인적 욕망을 누르고, 사회적 통념과 싸우고, 안락한 생활에 대한 본능적인 감정을 절제하는 그녀의 아픈, 인내의 눈물을 말이다.

이제 그녀는 그녀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이가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동지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김광주의 아이를 가졌다.

동지적 결합, 그것은 미완의 혁명, 미완의 사랑을 완성으로 끌어올리는 김광주와 김진숙의, 바로 우리들의 하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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