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자서전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말한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는, 다시 말해 해석가능한 형상으로 직조하는 것이 자서전이라면 그러한 자서전은 지금처럼 분열적이고 파편적이며 이미지와 실재 사이의 구분이 불가능해진 시대에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 자체가 더욱 분절적이고 비균질적으로 파열될수록 우리는 언어의 힘을 빌어 그 삶에 어떤 의미의 강이 흐르게 함으로써 삶을 비로소 완결시키고자 한다.

정신분석은 근본적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향한 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 속에 흩뿌려져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불러모아 의미의 형상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성적 에너지와 욕망의 흐름까지를 포함해 이러한 기억 불러모으기 작업은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해 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겸손한 윤리적 태도일지도 모른다.

정신분석이 희망하는 이러한 정체성 구성을 두고 볼 때 아득한 유년기의 꿈자락들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는 어머니의 숨결, 손결 그리고 눈결은 ‘내게’ 너무나 중요한 삶의 질료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삼각꼭지에 갇혀 있는 편협한 정신분석이 제공하는 이야기들 중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는 그 풍요롭고 그윽한 출렁거림을 빼앗긴 채 오해와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약과 약속, 투쟁과 배신의 이야기들 사이에서 어머니와 딸은 왜곡과 소외 또는 무의미를 고통스럽게 견디곤 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어머니들과 딸들을 초대해 멋진 자서전 쓰기 파티를 열려 한다.

어머니들이 기억의 우물에서 퍼올리는 이야기들을 받아쓰면서 딸들은 자신의 아름답고 힘찬 언어가 어머니의 육체와, 그 긴 삶의 숨겨진 속살에 은밀히 가 닿는 것을 떨림으로 체험하게 되리라. 어머니의 삶이 문득 자신이 한번도 제대로 질문해 보지 못했던 한 여성의 삶으로 낯설게 펼쳐지는 것을 보며 딸은 실망과 고통, 그리고 설레임과 기쁨을 동시게 느끼게 되리라. 이렇게 해서 어머니의 목소리와 딸의 손이 빚어내는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에게는 드디어 삶의 완성을 가져다 주고, 딸에게는 과거와 미래를 향한 선한 응시를 마련해 줄 것이다.

딸들이 쓰는 어머니들의 이야기, 어머니들의 생애사 ­이 프로젝트에 20대의 총명하고 경쾌한 여우들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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