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보적 의식이 진보적 생활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을 자주 확인한다.

글을 통해서는 진보적 담론을 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권위적이며 지극히 보수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는 지식인을 흔히 볼 수 있다.

의식과 생활 사이의 이 간극은 아직 봉건적 유제(遺制)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사회의 영향 탓도 크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기 성찰의 결핍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점은 지식인들의 사회로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하는 대학사회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서 해방되지 못한 모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제간의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되지 못하고 중세적인 장인/도제의 관계가 되기도 한다.

특히 대학강사들에 대한 착취구조를 모른 체하거나 다만 정부나 재단 탓으로 돌리는 대학교수들이 대학교수라는 상징자본을 이용해 사회적 발언을 하는 모습은 자기성찰의 결핍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기 주위의 모순과 착취와 맞서 싸우지 않는 대학교수의 사회적 발언에서 우리는 그 어떤 진정성도 기대할 수 없다.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자기성찰의 빈곤은 자신과 싸우기보다 남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사회화과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 각자는 나로써 존재하여 나 자신과 대면하기보다 항상 ‘남에게 앞서는가’나 ‘남에게 뒤떨어지는가’를 따지면서, 즉 남을 기준으로 존재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기규정은 아예 하지 않거나 소홀히하는 대신 남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하는 습속을 갖고 있다.

예컨대 ‘개량주의’는 운동권에서 퇴출을 선고하는 낙인과 같은 말인데, 남에게는 이 딱지를 쉽게 붙이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개량주의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사회주의자나 사민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기 어렵다.

자기성찰의 부족을 보여주는 비근한 예라 할 것이다.

지식인은 무엇보다 또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과 차갑게 대면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에 지식인으로서의 자아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자신에 대한 최종 평가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명제가 단순한 자기기만이나 자기만족의 표현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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