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 마르크스의 이 말은 지금도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현관 벽에 새겨져 있다.

앎을 다만 도구나 무기로 삼아 세계를 해석하는가, 아니면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울 것인가. 이 질문은 철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모든 지식인에게 던져질 수 있는 화두다.

? 그러나 오늘날처럼 세분화되고 복잡해진 사회에서는 사물과 현상을 정확히 읽어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과제다.

각 부문별로 전문 지식인이 양산되면서 보편적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지식인은 점차 희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시대적 반역아나 혁명가를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모든 가치가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면서 지식 또한 상품이 됐다.

지식인은 세계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세계를 해석하는 것도 아닌, 다만 시장에 내다 팔 지식이라는 상품을 가진 상인으로 전락한 것이다.

지식 상인은 지식인이 세상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세상이 지식인을 변화시켰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이 지식 상인들이 지식을 파는 곳은 권력과 자본이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지식 상인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기존 질서를 충실히 지키는 경비견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상징자본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배반하기도 한다.

자유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는 미국에서 50∼60년대 공부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귀국한 뒤 자유를 위해 싸우는 대신 자유를 억압하는 군사독재자들에게 복무하기 위해 앞다퉈 경쟁했다.

편안한 삶을 위해 지식과 지식인을 더럽힌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는 부시의 이라크 침공 명분과 부시의 학살전쟁을 지지한 노무현정부의 ‘국익론’을 앵무새처럼 옮기고 있는, 전문가라고 불려지는 지식 상인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 대학은 이와 같은 지식 상인들을 길러내고 있다.

대학생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자신이 지향하는 길이 지식 상인의 그것이 아닌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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