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주의·페미니즘 등 탈근대 담론 이해의 키워드로 떠올라

얼마전 막을 내린 로댕갤러리의 ‘신체풍경(bodyscape)’전은 인간 삶의 주체인 ‘신체’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자 무대인 ‘풍경’의 합성어로 그 이름에서부터 몸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몸으로의 관심 전환은 최근 몸을 둘러싼 책의 다양한 발간에서도 확인된다.

몸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몸의 권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계간 ‘전통과 현대’ 편집장 이승환씨는 “권력에 대한 물리적 분석을 위해 몸에 대한 분석이 요청된다”고 말한다.

흰 피부는 검은 피부보다 우월하고 남성의 몸은 여성의 몸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한동안 우리의 사고를 지배해 왔던 것처럼 몸은 권력관계 속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지위와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그 의미를 달리해 왔다.

제국주의 이래 서양인들은 식민지의 정치·문화적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류를 유럽·아리안계의 선진인종과 아시아·아프리카계의 후진인종으로 차별 분류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합리화시켰다.

이같은 식민주의 담론은 오늘날까지 흰 피부와 금발머리 등 서구적 미에 대한 동경으로 남아 있다.

몸에 대한 물리적 우위의 확보는 곧 정신적인 우위로 이어졌다.

서구인들이 세계적 우위를 점령하는 동안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와 이성 중심주의 담론이 지배적 사상이었다.

계몽주의 이래 서구 철학을 주도해 온 이성 중심주의에서 몸은 단지 이성의 발현을 위한 도구일 뿐, 느끼고 표현하는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몸에 대한 담론은 억압받아온 감성 복권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성적인 이성이 여성적인 감성을 지배한다는 사유에 대항해 여성의 복귀라는 페미니즘적 코드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성으로 자연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무차별적 자연 지배는 인간의 안위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생태중심주의는 곧 동양 정신으로의 회귀를 추구한다.

인간/자연, 이성/감성, 남성/여성 등의 이분법적 구도 대신 조화와 상호작용을 말하는 동양적 가치관은 서구 중심주의의 해체와 근대성의 극복을 위해 조명받고 있다.

몸은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대항 담론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타고난 생김새를 고치기 위해 성형 수술을 한다.

몸은 어느새 인간의 희비를 엇갈리게 하는 주체로 자리를 잡게 됐다.

몸은 단순한 물리적 현존이 아닌 정치적 문제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경기대 박영택 교수(미술경영학 전공)는 “몸은 자본주의 체제의 중점에 있는 동시에 최근의 급속한 사회·의식 변화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몸에 대한 미와 관능의 추구가 극한에 이른 지금의 현상은 여성의 몸을 이용해 돈을 추구하는 자본의 작동 구조가 만들어 낸 결과라는 것이다.

또 절제·생산을 미덕으로 여기던 고전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과 생존의 수단이었던 몸은 소비·레저를 즐기는 현대적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함에 따라 자기 성취의 목적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몸은 급격히 진행되는 세대교체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권위적인 세대는 정신에 억눌려 온 육체를 당연하게 여기는데 반해 오늘의 젊은이들은 자기 몸에 대한 콤플렉스를 운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몸을 은폐하고 억제한 것이 이전 세대의 문화라면, 몸에 대한 금기와 통념의 벽을 깨고 몸의 언어를 회복하려는 것이 바로 현 세대의 문화인 것이다.

탈근대적 담론의 기반으로 자리잡으며 세기적 화두로 떠오른 몸. 몸은 자아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주체성 회복과 근대 권력의 실체 파악을 위한 키워드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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