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아프리카는 ‘버림받은 땅’인가. 지난 6월 콩고민주공화국(콩고) 북부 지방에서 400여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

그 원인은 후투족과 투치족 간 갈등으로 이는 강자 주도의 역사가 빚은 비극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콩고 왕국은 영국·프랑스·벨기에에 의해 종족의 구분 없이 콩고강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나눠졌다.

20세기 냉전 상황 아래 동·서 콩고는 구소련과 미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갔고, 식민 통치가 끝난 후 국민국가가 수립되기 전 모부투 정권의 독재정치는 시작됐다.

1971년 집권한 모부투 대통령이 32년간 미국의 지원 하에 독재를 하는 동안 동·서부 콩고는 각 지역 간의 분리 독립 운동·쿠데타 등으로 정치적 암흑기를 겪었다.

이 때 심화된 모부투 정권의 핵심 반대 세력 카빌라 반군은 투치족과 연계해 모부투 정권에 저항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국의 지원이 약해지자 모부투 정권도 함께 약해졌고, 이와 더불어 콩고는 잠시 민주화 분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웃 국가 르완다의 투치족과 후투족 간 내전에서 쫓겨난 후투족이 콩고에 난민촌을 만들면서 콩고는 후투족의 르완다 공격 거점이 돼 다시 혼란에 빠진다.

원래 후투족을 지지했던 모부투 정권은 콩고 내 투치족을 강제로 추방하며 르완다 투치족의 후투족 박해에 대항했다.

카빌라 반군은 이 상황을 모부투를 끌어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고 투치족과 연계해 ‘콩고·자이레 해방 민주세력연합(ADFL)’을 조직해 무장투쟁을 전개한다.

이것이 ‘제1차 콩고 내전’으로 결국 1997년 5월 로랑 카빌라가 콩고의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카빌라 정권은 집권 과정에서 지나치게 후투족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이에 그들은 콩고 내 투치족을 강제로 제거하면서 결백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자 다시 투치족을 중심으로 한 반(反)카빌라 세력이 형성돼‘제2차 콩고 내전’이 발발한다.

이 내전은 투치족으로 구성된 르완다·우간다가 반콩고군을 지원하고, 앙골라·짐바브웨 등이 콩고군을 지원하면서 ‘아프리카의 세계 대전’이 된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자의적 국경 획정으로 시작된 아프리카 내부의 종족 간 갈등. 이제 그들은 기아·자연재해에 더해 ‘인재’까지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다.

역사가 낳은 사생아,‘콩고 내전’,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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