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수교 10주년 기념 전시회 "러시아 천년의 삶과 예술"을 다녀와서

"온갖 것이 모자라는 리시아에서 가장 희귀한 것은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세계일보 8월26일 러시아 관련기사의 첫머리다.

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당시 인근 주민에게까지 사실을 비밀에 부친 것부터, 얼마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사건을 허위로 공개한 것까지 러시아는 이미 "거짓말의 나라"로 인정(?)받았다.

우리는 이제 "러시아"란 말을 정치, 경제적 혼란, 가난과 부패, 권모술수적 정치보도 등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다.

세계육지면적의 6분의 1에 달하는 영토와 세계천연자원의 4분의 1을 보유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그리고 세계최초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려 냉전 초기 미국을 긴장시킨 것이, 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와 루빈슈타인 등의 많은 문호와 예술가를 배출한 "문화의 나라"가 바로 "러시아"임을. *** 한국측은 소련의 기초과학기술 도입과 새로운 시장진출을 위해, 소련측은 생필품 부족을 타개하기 위한 소비재의 공급을 위해 한. 러수교를 맺은지 10주년이 됐다.

이러한 가운데 한. 러수교 10주년맞이기념 유물전시회 "러시아, 천년의 삶과 에술"이 9월30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에르미타주국립박물과, 국립보석관 등 러시아의 26개 박물관에서 온 550여점의 작품이 출품되며 말레비치, 칸딘스키, 샤갈의 작품 등 아방가르드 작품을 비롯한 로마노프왕조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또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슈킨, 차이코프스키 등 위대한 문호와 작곡가들의 육필원고와 초상화, 구한말 양국간 미공개외교문서 등도 전시되고 있다.

특히 외교문서는 1884년의 국교수립부터 1910년 한일합방가지의 외교 및 영사부 설립관련문서, 1896년 대관식에 참석했던 한국 사절단의 사진 등 당시 한국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

이번 전시회에 대해 정준모씨(국립현대미술과 학예연구실장)는 "러시아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우리와 러시아의 미래를 가다듬는 진정한 거울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시회에 가서 일반인들이 역사적인 맥락에서 한, 러관계를 잘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전시회장이나 화집에 각각의 외교자료들에 관한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교문서의 경우 문서 하나하나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 대해 자세한 연구와 설명없이 첫 페이지만을 게시하고 있다.

특히 이 전시회를 준비한 90여명의 사람 중에 러시아에 대해 전공한 사람이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소위 "러시아 전문가"가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러시아 연구에 있어 미흡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스, 미국, 독일 특히 일본의 경우 러시아를 연구한 자료들의 질과 양은 우리나라의 것과 비교할 수 조차 없다.

이에 대해 민경현 교수(고려대 서양사학 전공)는 "국내에서 한중관계, 한미관계 또는 한일관계에 대한 연구와 비교할 때 한러관계에 대한 연구업적의 양과 질이 매우 부족해 특별히 강조돼야 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우리가 얼마든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무한의 잠재력을 가진 국가이다.

70여년간 사회주의를 통한 인간 이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러시아의 실험은 무위로 끝났지만 광활한 영토와 자원, 역사와 예술을 통해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의 중심에 서 있기 대문이다.

이에 이길주 교수(배재대 러시아학 전공)는 "만약 북한과 남한의 협력으로 러시아와의 철도건설이 성사되면 엄청난 자원을 지닌 러시아와의 경제적 교류는 그 중요성을 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통일이 가시화됨으로써 한반도는 국제관계에서 가지는 지정학적 유용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 그에 따라 한반도 주변 4강대국과의 관계도 더 큰 무게를 지닌 것이다.

이번 "러시아 천년의 삶과 예술" 전시회는 우리나라가 러시아와의 교류에 앞서 그들의 삶과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도 러시아학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토대로 할 때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